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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디자인을 위한 발언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정공 교수 홍석일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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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디자인을 위한 발언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정공 교수 홍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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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디자인을 위한 발언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정공 교수 홍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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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디자인을 위한 발언

 

이 사회에게 바라는 바 /

성숙한 사회의식 / 소비의식 /

이 토대위에 서고 싶다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교수 홍석일

에디터 이찬희 l 사진 스튜디오 salt

 

일시 2011년 2월 18일

장소 서울 서교동 에디토리얼 카페 B+

인터뷰이 홍석일

 

 

 

경험적 소비의 지점에는 다만 브랜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고 진한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느 ‘사람’이다. 나 개인에게 디자인을 좀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바라보게 한 홍석일 교수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의 앞에 앉아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주는 것이 학문적 지식에만 바탕이 된 영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학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너른 안목과 식견을 두루 갖춘 학자요, 디자이너다. 이 관계는 상호보완적이기에 이론과 실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디자이너로서의 영향력 이상의 좋은 사람이어서 주는 영향력, 익은 벼가 고개 숙인다는 말, 그 말은 홍석일, 그에게 가장 적절한 말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그는 나를 존중한다.

 

디자이너에게 비춰진 경험 디자인

얼마 전에 정부 부처에서 디자인 분야의 원천기술을 개발하자는 연구과제가 나왔어요. 연구의 내용인 즉, 우리나라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 디자인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디자인 서비스 전체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디자이너들의 감각에 의존해서 그때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겨우 맞추어 나가는 수준인데, 그런 과정 전체를 체계화 하자는 거죠. 리서치 단계부터 시작해서 디자인을 전개하는 프로세스, 나중에 제조 공정에 넘어갔을 때 생산성,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 체계를 만들자. 근래 대두되고 있는 서비스 디자인이란 개념인데 그건 사실 디자인 회사에서 예전부터 해왔던 것이에요. 디자인 매니지먼트, 디자인 컨설팅 이런 것들은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만들어지지 않죠. 표준화, 모듈화, 시스템화… 디자인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물론 중소기업을 위해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과연 그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요즘 많이 만들어지는 공공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보면 ‘공공디자인은 디자인 원리에 충실하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써 있어요. 표준화라는 관점에서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을 써 놓은 것인데 누가 이걸 몰라서 디자인을 못하나요? 이런 표준안을 만들어 놓고도 디자인 프로세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그걸로 끝나는 거죠. 과연 누굴 위해서 만드는 것일까요. 서비스 디자인이야 말로 경험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좋아요, 그럼 실질적으로 경험디자인이라고 하는 영역이 실제 디자인 프로세스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방법을 찾아야죠. 문제는 우리가 짧은 시간 안에 그걸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는 거죠. 우리는 불과 40여년 만에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가진 자동차를 만드는 수준까지 도달해있지만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자동차 디자인 속에는 축적되어 녹아있는 문화적 경험이 없어요. 20세기 들어서 디자인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동안 한국은 이런 흐름에 한번도 동참한 적이 없었죠. 파리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은 교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길거리에 아르누보 장식이 실물로 서있어요. 로마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은 로마 유적, 중세 성당, 박물관... 등에서 교실에서 배우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죠. 우리에게는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죠. 아르누보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아르데코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오늘날 서양 문화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는 있지만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디자인만 경험적인 관점으로 한다고 경험적 소비, 경험적 디자인이 생기지는 않죠. 저는 서양사람들이 수십,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역사의 두께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적 경험이 축적되고 우리 것으로 체화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를 소비한다는 것

스티브 잡스가 2005년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 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대학에서의 경험을 말합니다. 미혼모인 친어머니가 키울 형편이 안돼서 다른 가정에 입양 되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동안 양부모가 자기 학비를 대는데 버는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을 알고 나선 대학을 중퇴하죠. 그래도 지적인 호기심이 충만했던 잡스는 계속 학교에서 청강을 했다고 해요. 그 때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고 빠졌다고 합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당시에는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이 들었던 과목이었는데 나중에 매킨토시라는 컴퓨터를 만들면서 매킨토시용 폰트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몇 십 년 후에 그런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거죠. 그 당시에는 누구도 컴퓨터 서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컴퓨터를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영감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디자이너가 경험에 의해 소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 서양에는 그럴 수 있는 역사와 문화가 축적이 되어있어요. 스티브 잡스가 리드 대학에서 매료되었던 서체가운데 하나는 16세기 중세 때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개라몬드라는 서체인데, 이후에 애플사의 로고에 사용되었죠. 20세기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매킨토시라는 컴퓨터를 만들면서 그 컴퓨터 이름에 중세 때 디자인 된 개라몬드 서체를 적용했어요. 미래지향적인 서체를 만들어내도 시원찮은 첨단 제품에 중세 때 만들어진 서체를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는 것, 서양인들에게 그런 역사, 문화적 맥락이 있어요. 서양의 전통 미술, 공예, 건축이 현대의 산업기술과 접목되어 디자인으로 발전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맥락이 축적되어 있지 않죠. 분명 우리도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술과 문화가 있지만 현대적인 산업화나 예술의 대중화와 접목되지 못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가공한다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하나하나 인위적이고 철저하게 인공적이죠.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인 미의식은 꾸미지 않은 그대로 자연과 동화되는 경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서양 디자인에서 추구하는 인위적인 요소와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한국적 미의식과의 괴리가 오늘날 한국 디자인이 당면한 딜레마라고 봅니다. 서양식으로 디자인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적인 요소를 가지고 디자인하는데 이런 방식이 우리 것으로 학습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주택 단지 입구마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타이포그래피를 기하학적인 구조물에 간판으로 부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을 입구에 울퉁불퉁한 자연석에 붓글씨를 써서 세워놓아요. ‘자연 그대로’ 라는 콘셉트가 회화라든지 전통적인 예술에서는 굉장히 높은 미의식일 수도 있어요. 비록 이것이 우리 정서에 맞는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의 디자인 관점에서는 디자인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국내 굴지의 디자인 페어에서 어떤 공예가가 수작업으로 만든 나무의자를 전시해 놓고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하고 수천만 원에 팔린다고 해요. 처음부터 산업 기술과의 접목이나 대량 생산은 전제되지도 않았어요. 그건 디자인이라기보다 예술 작품, 또는 공예품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요. 요즘에는 순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뭐든지 디자인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는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가 다 디자인이다’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모든 것들을 전부 디자인이라 정의할 수는 없죠.

 

경험 축적

디자이너들에게 예술적, 문화적인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 수업시간에 디자인을 이루어 온 서양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교실 문을 열고 나가면 수업시간에 배웠던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양 디자인과 근본적으로 경쟁하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일본 자동차 산업도 일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혼다의 경우,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만들던 회사였는데 4륜 자동차를 만들면서 자동차 기술과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 서양의 자동차 레이스에 뛰어들어 실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 자동차 기술의 발전 흐름 속에 일본 자동차의 역사가 있는 거죠. 그 역사에 함께 동참했었으니까요. 우리도 그래야 해요. 우리 자동차를 서양인들에게 제시하려면 서양사람들이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하죠. 이태리의, 작지만 강한 기술력을 가지고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를 만드는 소규모 회사를 ‘까로쩨리아’라고 부릅니다. 이 말의 어원이 ‘마차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요. 마차를 만들던 기술이 오늘날 첨단 자동차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죠. 이런 것이 서양 디자인의 역사, 문화적 맥락입니다. 이런 맥락을 하루 아침에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산업 기반을 갖추기는 했지만 서양의 것을 따라 하는 모방이 아니라 서양식 디자인을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1920년대 바우하우스에는 일본에서 유학 온 학생이 있었어요. 1980년대 멤피스 디자인 운동에도 일본 디자이너들이 참여했지요. 일본인들은 그런 디자인의 흐름에 동참해서 서양의 디자인을 받아 들이고 나아가서는 호흡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도 서양식 사고방식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아 그렇지 한국사람들의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마음만 먹으면 서양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봅니다. 양궁이나 쇼트 트랙, 골프, 피겨 스케이팅 같이 서양식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하고 그 이상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면 우리가 세계 1등이 되고 우리가 만든 방식이 세계적인 규범이 되는 것이죠. 한편에서는 서양 디자인을 어설프게 따라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우리식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적인 것이라도 세계적인 보편성이 있어야 해요. 그런 분에게 제가 물어보죠. “그럼 이제부터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서양 음계를 버리고 우리 고유 음계인 ‘궁상각치우’로 음악을 해야 합니까?”

 

보편적 가치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술적 퀄리티를 산업기술과 접목하여 기능성, 효율성, 경제성 등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선진국 수준에 버금가는 사회적, 기술적 토대를 만들었어요. 그러나 우리 것으로 서양을 끌어들이고 끌고 갈 수 없다면 서양 것을 답습해서라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문제는 문화적인 충돌에서 오는 괴리감인데, 서양 것을 받아들이자니 아류, 흉내, 자기비하를 해버리는 거죠. 당장은 축적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흉내일 뿐이지만 이 또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에요. 예전에 국내 굴지의 모 기업에서 국내 디자인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에게 고급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외국에 출장 갈 때에는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일류 호텔에 묵으며, 일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라고 장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짧은 기간에 일류 체험을 했다 해서 과연 디자인도 일류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일류 체험을 하라는 뜻은 그런 과정을 통해 일반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아주 고급스러운 것들을 추구해내라는 의미예요. 그런 경험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봅니다. 안상수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구텐베르크 성경을 꼭 한번 실제로 보아야 한다고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진으로 보면 되지 꼭 그렇게 할 것까지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실물을 봐야겠다는 열망이 들었어요. 왜냐면 그 성경을 만들기 위해 구텐베르크가 어떤 공을 들였는지 알면 알수록 사진 속에서만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차원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구텐베르크가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 그 과정을 어떻게 경험했는가를 들여다보면 그 시대 문화를 다 알 수 있어요. 그 책 안에 다 녹아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르네상스 시기의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우리나라 디자인 분야에서 르네상스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화가 아니라 서양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무관심하게 여기다간 서양의 뿌리에 영원히 접근하지 못할 거예요. 오늘날의 현상만 보고 이해한다면 이끌기는커녕 그 뒤를 쫓는 것도 힘들 수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외국 디자인을 그 뿌리부터 경험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양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양인들과 보편적으로 디자인을 하는 경지에 올라가 같은 반열에서 논해져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도 가질 못했어요. 그게 현실이예요. 스스로의 디자인 역량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느냐가 중요한 거죠.

 

Origin = 반응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서양문화의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죠. 우리에게도 있던 문화인데, 서양문화가 들어와서 뒤바뀐 경우가 그렇죠. 예를 들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들어오기 전부터도 커피를 전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계층들이 있었는데, 커피를 전문적으로 세분화해서 음미할 수 있는 전문 계층이었고 소수였죠. 물론 그 전에는 다방같은 곳에서 커피를 소비할 수 있었지만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하나하나 전문화하고 세분화시켜서 대중문화로 음미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 어떤 문화가 형성된 거죠. 담소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했다는 것도 중요하죠. 스타벅스는 커피를 전문화 시킨 반면, 대중화시켰다고 생각해요. 뉴욕같은 도시에서는 우리나라 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하다못해 가볍게 한잔 마시는 것도, 일회용 용기에 담아주더라도 꼭 내린 커피를 마시죠. 그런데 그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이제는 한 장소에서 갖가지 종류의 전문적으로 세분화된 커피를 음미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마실 수도 있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 자리로 가지고 갈 수도 있게 됐죠. 미국식 문화가 세계화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된 것. 거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토종 브랜드에서도 그 방법을 따라갔죠. 그리고 이제는 경영기법, 영업노하우 등을 습득한 뒤에 같은 방식으로, 같은 장소를 만들어 내니까 사람들이 큰 차별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죠.

 

퀄리티를 갖기 위한 노력

어찌 보면 결국은 서양 것이 우월하고 우리는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말씀 드린 셈인데 서양 것을 추구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사람들의 본질을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우리의 수준을 높여가자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죠. 무조건 서양식의 무언가를 추구하고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서양 것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퀄리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오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게 다 어디로 갔나 싶어요. 조선시대까지 상류사회에서 지켜 내려오던 고유의 전통과 관습은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고 현대 사회의 시민의식과 삶의 규범들은 새로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빠른 성장의 토대를 만들긴 했지만 문화적인 기반을 축적하고 그 수준에 걸맞는 수준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우리 것을 되찾아온 것도 아니고 서양 것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의 우리나라 결혼식을 보면 우리 것도 아니고, 서양 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것이 만들어져 있죠. 이런 얘기를 하면서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이 있는데 현재는 돌아가신, <뿌리깊은 나무>를 만들었던 한창기 선생인데요. 그분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다시 계승하는데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 분이세요. 사라져 가는 판소리 같은 것을 다시 채록해서 레코드판으로 만들어내고, 잊혀졌던 전통 문화를 단행본으로 만들어내고 우리 문화를 복원하느라 굉장히 애쓰셨던 분인데 1982년에 뜬금없이 『서양식 예절』이라는 책을 한 권 냈어요. 서문에 보면 ‘문화인들이 외국에 나가 활동을 하다 보니 외국 사람을 만나려면 외국식 예절을 갖춰야 되겠다. 그런 걸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만든 책이라고 써있죠. 서양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사소한 예절을 말하고 있는데, 손님을 접대할 때의 예절, 음식 준비하는 예절, 결혼식,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지키는 예절을 적었어요. 예절은 예전에는 서양 사람들 중에서도 귀족들이나 지켰던 것인데 이제는 보편화 되어 일반사람들도 지키는 사회적 규범이 됐죠. 서양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의식적인 예의, 막상 보면 별것도 아니예요. 식사할 때 소리를 내지 마라. 게를 발라 먹을 때의 방법 등, 아주 소소한 것인데 서양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기관에서뿐만 아니라 집과 사회에서도 구성원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하는 격식을 교육시켰죠. 서문에서도 나오는데 서양에서는 예절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의식이 희박해요. 말은 하지만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지 않죠. 우리는 우리 식의 절차를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없잖아요. 이 문제는 디자인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미적인 문제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적인 것을 착안하기 위한 기반 구조, 사회적 의식 구조가 만들어져야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확장되죠. 사회적인 시민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의식이 같이 간다고 생각해요. 문화적인 욕구는 사회적인 의식구조와 같이 가게 되는 것 같고요. 남 앞에서 조심하고 격식을 갖춘다면 예술을 즐기려고 하겠죠. 그런데 그런 토대 없이 겉보기에 예술적인 것만 가지고 예술을 즐기려고 하니 문화가 만들어질 리가 없죠.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컵을 디자인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것이 우리나라, 이 만불 소득수준의 의식구조인 거죠. 디자이너가 언급할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결국은 ‘디자인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디자인을 수용하는 일반 대중의 미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시민의식의 기본적인 기반과 토대가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을 배려하고 사회적인 질서를 지키는 것은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즐기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자연발생하는 거죠.

 

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가

현재 정부에 계시는 분이 우리나라가 10년 후에 새롭게 이끌어나갈 ‘미래 성장 동력 10가지’를 선정목록을 들고 하버드대학의 어느 교수를 찾아가 가능 여부와 방법을 물어봤다고 해요. 예로 들어 그 중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죠. 문제는 아이폰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어요. 미국은 그런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있죠. 실패가 쌓여도 한 번의 성공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나라죠. 그리고 성공할 때까지 사회가 기다려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품 하나 만들었다가 실패했을 때 없었던 일처럼 무산시킵니다. 왜 실패를 경험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가. 실패했다가는 모두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 그렇기도 하고요. 애플이 가지고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경험이 우리나라 토양에는 없다는 겁니다. 창의적인 사회적 토양을 만들려고 하면 앞선 실패의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되죠.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손해를 감수할 준비,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가, 기다려 인내할 수 있는가 등,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험이 축적되기 어렵죠. 예를 들면, 성숙한 자동차 문화가 없으니 지금같이 우리 자동차 업계가 멋있는 자동차를 만들면 뭐합니까. 우리나라에는 교통질서 문화가 없어요. 남을 배려하고 조심하는 교통문화가 있다면 좀 더 멋있는 자동차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 함부로 자동차 끌고 나오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벤츠, 아우디 같은 차가 질주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정도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면 바쁘겠지, 그런데 운전은 왜 저렇게 할까. 벤츠가 아깝다.’ 그런데 미국에서 경험하는 교통문화는 너무나 상반되죠. 미국 초, 중등학교에서는 방과후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아이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지 않아요. 그래서 방과 후에 가면 학교 앞에 차가 줄 서 있어요. 학교 밖에 애들을 내보냈다가 사고라도 나면 학교가 책임져야 하니까 학교는 철저하게 지킵니다. 우린 그런 사회적인 의식이 없어요. 우리는 알아서 집에 찾아가라고 하죠. 관리하지 않으면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쨌든 학교 밖에 서 있는 차들을 보면, 벤츠, BMW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값비싼 차들이 즐비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부유층 자제가 아닙니다. 그냥 중산층이죠. 어떤 집은 벤츠를, 어떤 집은 허름한 트럭을 가지고 오지만 그 차가 그들에게는 잘 살고 못 살고에 대한 가치평가나 척도가 아닙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요. 벤츠샀다고 잘난 척하지 않아요. 그냥 그 아이네 차가 벤츠일 뿐이예요. 아이들도 그런 것에 기죽거나 하지 않죠. 사회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죠.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런 것에 대한 편차가 크죠. 특별히 어떤 것이 형성되는 걸 보면 아직 사회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이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 우리 사회는 저런 수준까지 못갔을까. 거꾸로 보면 우리는 월드컵 때 시청 앞으로 나와 열광적으로 응원하면서 그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애국심에 불타 있지만 평상시의 우리나라 사람의 애국심에 대한 표현을 보면 미국 사람들과 비교가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평소에 자동차에 조그만 리본모양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그 스티커에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군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문구가 씌여 있습니다. 작은 스티커 한 장은 사서 붙이는 것으로 군인들을 도울 수 있다고 하면 기쁘게 스티커를 사고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니죠. 사회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 참 작은 것인데 그건 미국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감대거든요. 기쁘게 동참하고 남에게 알려서 동참을 유도하는 바탕에는 미국 시민이라는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도 저런 자긍심이 있다면, 자기가 속한 사회에 내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배려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좀 더 사회가 성숙해야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자면 미국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어바인이라는 도시가 있어요. 몇 년 전에 한국 교포분이 시장이 됐죠. 그런데 그 시장 월급이 2천 달러밖에 안 되요. 우리나라 돈으로 이백 만원 정도. 어느 기자가 그 월급으로 어떻게 시장직을 수행하냐는 질문을 하자 ‘시장은 명예직이고 그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봉사직’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빚이 많아 모라토리엄를 선언했던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 얼마 전에 육천 만원인가 들여서 시장이 타고 다니는 차를 바꿨어요. 5년 된 차라 규정에 의해 바꿨다고 하더군요.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군림하고 있죠. 비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가 성숙한 선진사회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민주화 = 디자인의 가치

디자인은 사회적인 구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예술은 돈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다지만 디자인은 사회 어느 곳이든 곳곳에 개입이 되어있어요. 당연히 사회와 무관할 수 없죠. 앞에서 말한 성숙한 사회와 시민의식이라는 토양이 있어야만 디자인이 그 위에 설 수가 있어요. 그런데 아직 사회가 성숙되지 못했다면 디자인 혼자서만 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들의 수준만 높인다고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어느 나라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문화라는 것은 고급문화에서 하위문화로 내려오는 것이지 하위문화가 고급문화를 변화시키는 경우는 없었어요. 고급문화라는 것은 지배 계층이나 누리던 특권이기는 했지만 그런 고급문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주 지고지순한 예술적 경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제일 높은 예술적인 경지를 찾아내고 만들어내죠. 현재의 디자인은 대량 생산의 시스템 안에서 보편적으로 대중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있죠. ‘예술의 민주화’라고 하기도 했던 바로 ‘디자인의 가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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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일

현재 연세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디자인예술학부 시각디자인 전공 부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BFA : 시각디자인 전공), 미국 Pratt Institute, Art & Design대학원 컴퓨터 그래픽스학과 졸업(MFA : 컴퓨터 그래픽스 전공), 서울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박사과정을 수료(시각(공공)디자인 전공)했다. 현재 행정안전부 공공디자인포럼 위원, 강원도 디자인강원 자문위원단 위원, 원주시 디자인자문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중구청 디자인자문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국가브랜드위원회 디자인자문위원, 문화 관광부 여권디자인개선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한국공공디자인학회 공공디자인강좌』(공저), 『한국공공디자인학회 유럽의 도시 공공디자인을 입다』(공저), 『3D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영 상』(안그라픽스), 『그래픽 디자이너를 위한 크리에이티비티』(안그라 픽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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