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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⑨ 디자인, 예술과 비예술 사이 -유혜인-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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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⑨ 디자인, 예술과 비예술 사이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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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⑨ 디자인, 예술과 비예술 사이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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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⑨

디자인, 예술과 비예술 사이

/유혜인

 

# 디자인과 예술의 복잡미묘한 관계

첫 번째 질문, 디자인 실무나 교육현장에서 ‘당신의 작업은 예술이지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비난조의 목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두 번째 질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선배 디자이너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동경해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상의 질문들에 모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을 디자이너보다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라 간주한다면 그 판단은 옳은 것일까? 이러한 일련의 물음들은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물음으로 옮겨간다. 디자인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디자이너는 예술가인가, 예술가가 아닌가?

통념상 디자인이 넓은 의미의 예술에 포함된다는 점은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문화의 융합과 혼성을 이야기하는 오늘날,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협업 내지 ‘경계 넘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얼핏 양자 사이의 ‘차이’ 운운하는 것이 무의미한 논쟁거리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는 자주 거론되며, 제도적, 관습적으로도 디자인과 예술 사이의 경계는 명백히 존재한다. 학제상 디자인과 순수미술 분과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다는 점은 단적인 예이다.

도대체 디자인과 예술은 어떤 차이가 있기에, 어떤 이들은 디자이너가 예술가인 양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디자인이 곧 예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된 논쟁들이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디자인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서로 구별되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하고, 포함관계를 이루기도 하는 디자인과 예술의 복잡한 관계는 디자인 개념을 규정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칫 현실의 다양성을 배제하거나 보편화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내지 합의를 구하려는 다방면의 시도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는 곧 디자이너의 정체성 문제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주변적인 논의로서, 디자인의 멀고도 가까운 친척, 예술의 정의 이론들에 관해 - 여기서는 서양에서 전개된 이론에 한정하여 -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하게 산출된 예술이론의 맥락에서 디자인이 점하는 위치를 파악하고, 나아가 디자인의 정체성에 관한 사유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예술 정의의 시도들

예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가장 고전적인 시도는 ‘모방론’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대상을 잘 모방하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는 모방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로부터 출발하여, 18세기에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하는 것’ 1 이라는 공식적인 예술 정의가 등장하기까지, 오랜 세월 서구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인간의 특수한 감정을 환기시키 는 것이 곧 예술이라는 ‘표현론’이 대두하였고, 이어 작품의 순수한 형식적 특질이 주는 즐거움만을 예술 작품의 본질이라 여긴 ‘형식론’이 주장되기에 이른다. 칸트에 의해 ‘무관심성’과 ‘합목적성의 형식’이라는 특징으로 설명되는 ‘아름다움’의 관념에 기반한 형식론은 이후, 그린버그를 비롯한 모더니즘 미술비평가들의 형식주의 비평으로 이어진다. 특히 ‘무관심성’이라는 개념은 아름다움이 이해관계, 즉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연루되지 않는 순수한 관조의 대상에만 한정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일반에 ‘아름다움’의 관념을 적용하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예술적 실천은 기존의 개념화, 보편화하려는 노력을 배반하기 일쑤였다.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이전까지의 예술 이론들이 현실의 모든 예술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은 예술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에 관해 의문을 나았다. 철학자 아서 단토는 오늘날의 예술은 단일한 이론적 규준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2 단토의 ‘다원주의’ 예술론은 예술 개념이 하나의 공통된 속성으로 정의되지 않는 열린 개념이라는 일명 ‘예술 정의 불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예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이론가들의 시도는 계속되었는데, 그들 중 한명으로 조지 디키를 들 수 있다. 그의 주장인 ‘제도론’은 어떠한 대상에 “예술계의 일원이 감상을 위한 후보로서의 자격을 수여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그 대상이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결정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3 이제 예술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내재적 특성이 아닌 예술계, 즉 작가, 비평가, 관객과 맺는 관습과 제도가 예술을 정의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예술제도’의 인정만이 예술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일까? 우리는 골목길에 어느 무명 아티스트가 남긴 벽화를 보며 예술이라 말하기도 하고, 공들여 제작된 도자기에 대해서도, 심지어 감동적인 음식 맛을 보았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는데 말이다. 이러한 반론을 예상한 디키는 예술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 즉 ‘분류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로 구분한다. 그리고 예술 정의를 구할 때만큼은 그 용어를 분류적 의미에만 한정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멋진 자연 풍경을 보며 ‘예술’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때, 그것은 엄밀히 ‘분류적’ 의미가 아니라 ‘평가적’ 의미 즉, ‘좋음’, ‘탁월함’과 같은 가치평가를 담는 개념으로 쓰인 것이다.

이로부터,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의 ‘예술’이라는 단어는 ‘분류적’ 의미로 쓰인 것이며, 자신의 작업물을 ‘예술작품’이라고 평하기를 원했던 어느 디자이너의 욕망은 ‘평가적’ 의미의 ‘예술’ 개념에 기인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예술이다’라는 통념에 대해서, ‘예술’의 의미를 분류적 의미로 간주하면, 명백히 이 명제는 거짓이 되어버린다. 보통 디자이너는 예술제도가 아닌 별개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디키가 말하는 예술제도가 ‘디자인계’까지 포괄한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통념을 받아들인다면, 디키는 디자인과 예술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셈이 된다.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를 자연 풍경이나 음식의 맛이 ‘예술’이라는 용어와 관련해 갖는 비유적인 관계와 동급으로 놓기는 망설여진다. 디자인과 예술은 직관적으로도 ‘시각성’이나 ‘인공성’이라는 실제적인 친연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술의 비판적 거리와 존재론적 가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은 전통적인 예술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노선을 취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적을수록 많다’ 와 같은 경구들은 대량 생산 체제가 도입된 당시에 팽배했던 기능주의 디자인의 일면을 보여준다. 장식을 금기시했던 이러한 모더니즘 디자인의 강령은 ‘적을수록 지루하다’고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에 의해 무너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의 과정은 예술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를 든 여러 예술가들은 모더니즘의 획일성과 전체성을 공격하기 위해, 예술의 원본성과 자율성을 위배하는 제작방식을 의도적으로 도입하였다. 복제나 차용, 패러디와 같은 방법이 그에 해당하며, 때로 그러한 예술 작품들 중에서 디자인 생산물과 형식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 예술가의 작업은 디자인이라 보아도 무방한 것일까?

예술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특히 역사 서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전개되어 왔다. 미술사 텍스트가 주축을 형성하는 동시대 서구의 예술이론은 여전히 예술과 디자인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관점을 고수한다. 서구의 미술사가들에 의해 혁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디자인 그리고 페미니스트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사진작업은 디자인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성취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미술사가들은 현대 이후 자본주의 생산체제 하의 ‘산업 디자인’에 해당하는 것을 디자인 일반의 용어로 지칭하면서 배척하는 시각을 보여준다. 예컨대 미국의 진보적인 미술사학자 할 포스터는 자신의 미술사 텍스트에서 1980년대의 옵아트가 “디자인으로 환원”되었다고 비판하며, 차용미술에서 발전한 상품조각이 미술을 “디자인과 키치로 대체”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4 또한 그는 예술의 아방가르드 기획은 자본주의의 문화산업에 의해 디자인이라는 “그릇된 굴종”으로 변질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5 이와 같은 혹평은 자본주의 소비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의 디자인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예술은 반드시 경제적, 정치적 권력 및 이데올로기와 ‘비판적 거리’를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 미술사학자가 보기에, 현대인의 소비생활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디자인’은 예술적 비판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디자인을 엄밀한 의미의 예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앞서 다원주의 예술론을 주창했던 단토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예술이 지닌 특수한 존재론적 지위를 고수한다. 그에게 예술은 궁극적으로 비일상적이며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물건과 외견상 차이가 없어 보이는 뒤샹의 변기나 워홀의 비누박스가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는 까닭에 관해서는 섬세한 철학적 분석을 행하지만, 유아용 책에 실린 “삽화”에 관해서는, 재고의 여지없이 예술과 관계없는 것이라 단정한다.6

#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정체성 찾기

동시대 예술실천의 주된 경향 중 하나는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이다. 음악이나 무용을 선보이는 퍼포먼스 미술이 1970년대부터 격화되었다면, 전시장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관객에게 제공하거나, 의상이나 가구를 디자인하여 선보이는 등의 작업은 1990년대 이후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다.7 이러한 현상은 다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라는 말이 유효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듯도 하다. 그러나 과연 관람객을 상대로 한 예술 실천의 일부로 디자인을 도입한 이들을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디자이너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러한 동시대 예술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대 이후의 디자인을 바라보는 미술사가, 예술이론가들의 시선은 ‘디자인’ 개념을 협소하게 사용하거나, 때로 쉽게 배제해버리는 등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예술과 디자인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서부터 결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기 가까이 지나온 오늘날 우리사회에 디자인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디자인=산업 디자인’이라는 기존의 관습적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한다면 디자인의 입지가 너무도 좁아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물을 제작하는 디자이너, 다양한 그래픽 실험이 담긴 결과물을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디자이너, 환경운동을 위해 행인의 티셔츠에 돌고래를 그리는 디자이너의 작업을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의 내재적 속성으로 예술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실패의 과정이었던 것처럼, ‘디자인은 무엇이다’에 관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분류적’ 의미의 정의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디자인의 ‘본질’을 논하기 이전에, 시간과 함께 변천해온 다양한 디자인 담론들, 디자인과 결부된 문화적 현상을 그 시대와 사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면밀히 탐구하는 작업은 가능할 것이다. ‘공공의 예술’, ‘익명의 예술’ 등 디자인에 관한 여러 통찰들, 선구자들의 경험과 사유의 축적은 이를 위한 소중한 자료이다. 디자인이라는 용어와 결부된 미학적 개념에 대한 분석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근접 학문인 미술사학이나 예술론의 성과들을 함께 고려하는 것은 같은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학문 간의 해석적 차이를 이해하고 좁혀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작업이 지향하는 바가 예술인지 디자인인지 혼란을 겪던 학부 시절, 디자인을 아르바이트 삼아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한다는 젊은 예술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에게 디자인 활동은 생계수단의 일부였으나,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일컫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내게 결핍된 어떤 것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술가라는 자부심’이었다. 비록 낭만주의적인 자의식에 기인한 것일지라도, 그 자부심은 그들의 작업과 삶의 중요한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에게 자부심이란 무엇인가? 대학 입학 후, 한 두 번의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녹녹치 않은 현실을 경험하고, 반짝이는 디자이너의 삶이라는 환상을 쉽게 조각내버리는 현실의 벽 앞에서 디자이너는 어떤 성격의 자의식을 지닐 수 있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되돌아보니, 디자인의 정체성에 관해 어렴풋한 윤곽을 잡기는커녕, 대답 없는 질문만 끊임없이 늘어놓은 양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여기서는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에 관한 논의를 너무 쉽게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디자인의 정체성에 대한 다방면의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수긍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소수의 스타 디자이너들처럼 언론매체에 실리지 않고도, 전시를 열지 않고도, 디자인으로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디자인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대답은 이 물음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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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arles Batteux, 『The Fine Arts Reduced to a Single Principle』, 1947

2 아서 단토(Athur Danto), 이성훈 외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3 조지 디키(George Dickie), 오병남 외 옮김, 『미학입문』, 서광사

4 할 포스터(Hal Poster), 이영욱 외 옮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출판부, p.167-177

5 할 포스터(Hal Poster), 이정우 외 옮김,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시지락, p.34

6 아서 단토(Arthur Danto), 김혜련 옮김,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길사, p.283

7 프랑스의 미술이론가이자 큐레이터 니콜라 브리오(Nicolas Bourriaud)는 『Relational Aesthetics』에서 협업(collaboration)과 계약(contracts)의 과정을 도입하여 사회적인 직업들의 관계모델을 탐색하는 예술실천들을 소개한다. 예컨대 이탈리아 예술가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토끼 형상의 의상을 디자인해 전시 기간동안 화랑주에게 입고 있게 했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클레그와 거트먼(Clegg&Guttmann)은 르꼬르뷔제의 건축을 연상케 하는 책장을 디자인해 전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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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인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디자인의 정체성,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남다른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다방면적인 고찰이 필요함을 글을 빌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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