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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페다고지의 디자인 산책 ④ 사물의 배치 : 시선을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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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페다고지의 디자인 산책 ④

사물의 배치 : 시선을 만드는 힘

글 원마리나

 

 

“의자의 일반적인 배치와 야회 도중의 의자 위치의 미묘한 변환은 그 자체로 담론을 구성한다.”『사물의 체계』, 쟝 보드리야르

의자는 직립동물인 인간의 신체적 속성상 앉을 때 동선 절약을 위한 최적의 장치이다. 의자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왕좌였으며 이 때 태양을 상징하던 절대 신과 동일한 왕이 앉는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품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의자는 등받이가 고정되어 있으므로 앉았을 때 시선의 방향이 고정된다. 그러나 좌식문화에서는 등받이가 따로 없기 때문에 시선을 두고 싶은 대로 몸의 방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온돌 난방을 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은 좌식문화를 발달시켰고 의자는 조선말 서구식의 근대화 과정에서 도입되었다. 이때부터 의자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히 몸의 위치나 자세로 공간 속 시선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시선, 보는 것, 보이는 것, 혹은 보고자 하는 의지는 시각이 왕좌를 차지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존재성까지 규정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껴가는 시선 - 벤치

의자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휴식을 위한 가구로도 이용된다. 서양의 벤치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쉼 공간으로 다양한 장소에 배치되고 이용되는데 이름이 환기시키는 감성 그대로 서구의 이국적인 정취, 그 중에서도 화려한 느낌보다는 서정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체로 받아들여져 가요의 노래 말, 일러스트, 광고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공원의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혹은 도심의 길가 등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의 가장 자리에 벤치가 위치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서로 마주보지 않게, 시선의 맞닿음 보다는 각자가 허공을 바라보게 되어있어, 혹시나 낯선 이와 교류하게 될 불필요한 순간을 아예 차단해 준다. 타인과의 시선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의 정서. 이렇게 한 방향으로 앉을 수밖에 없이 디자인 된 벤치에서 우리의 시선은 모여지기 보다는 분산되고 비껴가면서,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연결을 희망하는 모순적 맞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도심과 공원의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벤치가 있는가 하면, 주민의 공동주거 공간에 배치된 벤치도 있다. 이들은 입식 생활방식을 기준으로 설계된 주거공간인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현대식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마을의 현대판 디자인으로, 주민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마을이라면 아파트단지는 전문가가 계획적으로 디자인하여 제공된다. 이곳의 벤치는 주민을 위한 쉼 공간으로 이용된다. 입식문화를 반영하는 아파트 단지에 서구의 벤치가 있다면, 한국의 마을과 동네에서는 평상을 찾아볼 수 있다.

모이는 시선을 만드는 힘 - 평상

근대화 이전에 우리의 공동체에는 평상이 있었다. 평상의 국어 사전적 정의는 平狀(평평할 平, 마루 狀) 혹은 平床(평평할 平, 마루 床)의 한문을 쓴다. 나무로 만든 침상의 하나이고 밖에다 내어 앉거나 드러누워 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예로부터 평상은 유희와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곡식을 널어 말리거나 집안일을 하는 외부 작업실의 개념으로 쓰였다. 입식생활이 익숙해진 오늘날 과거 좌식생활의 상징인 양반다리를 할 수 있는 이 평상은, 현재 사극에서 재현된 모습이나 시골마을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의 가파른 언덕에 성곽을 등지고 형성된 한 마을에서 이 평상은 원형적 기능을 보존한 채 재현이 아닌 현존의 상태로, 마치 살아있는 물건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의 삼선동 장수마을은 한국 전쟁 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공터에 루핑 집을 지으며 마을이 시작된 곳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이곳에서 평상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바로 그 곳’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언덕 꼭대기의 경치 좋은 곳에 수많은 계단들 사이 갈림길이 되는 그 틈에 평상이 있는가 하면, 이집과 저 집의 현관문 사이에 위치해 있기도 한다. 전망 좋은 쉴 곳을 제공하는 평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었다 가는 휴식처가 되고, 그러다 만난 또 다른 마을 주민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된다. 마을의 중심부에 골목길들이 모여 교차로가 되는 곳의 평상은 주민들의 술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모여앉아 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 어느 노부부의 집 뒷마당의 평상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외부인의 접근을 제한하는 대문도 표시도 없다. 가끔 노인들이 모여 화투를 치기도하고 더운 여름밤 잠을 청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때의 평상은 비껴 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눈 맞춤, 모이는 시선을 만들어 내는 힘을 지닌 물건이 된다.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평상은 제작자와 사용자가 마을주민으로, 동일하다. 자투리 각목, 지붕을 보수하고 남은 슬레이트, 방에서 쓰다 남은 장판이 평상의 재료가 된다. 평상의 한쪽 모퉁이는 한 계단 위를 다리삼아 있기도 하고, 벽돌 몇 개를 쌓아올려 다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즉각적으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져 형태의 정형성은 없다. 제작자가 항상 이용하다 보니 수리와 보수는 유동적으로 일어난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기둥을 세워 천막을 치거나 발을 내린 평상도 있다. 집밖에서 머무르기에 필요하다면 지붕도 만들고, 더 좋은 재료가 있다면 보수를 해서 덧대어 깔아 놓은 장판도 서너 겹이다. 형태의 심미성이 어떻든 기능에 충실하기에 머무르기 편한 공간으로 항상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 된다. 주민들의 손길로 쓸고 닦고 가꾸어지는 평상은 형태가 조금씩 변하여 휴식하기에 더 없이 편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오가닉 디자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 평상은 비전문가가 만들었기에 형태의 심미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앉거나 누운 사람들의 시선이 맞닿게 만드는 평상은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을 활발히 수행해 낸다. 형태의 심미성이 어떻든 기능에 충실하기에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물건이 된다. 윤이 나게 닦고, 확장되고, 지붕이 생기고, 발이 쳐지고, 수 없이 변화하면서 마치 호흡하는 듯한 이 평상은, 결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 50년 역사의 장수마을은 어떤 형태로든 개발이 될 것이다. 이미 재개발된 옆 동네처럼 흔적과 여운, 기억이 사라진 아파트로 변하면서, 이곳의 평상은 이국정서의 벤치와 함께 전통의 아우라를 입은 팔각정으로 변신하여 돌아 올 것이다.

시선에 의한 배치 - 팔각정

팔각정은 계획적으로 지은 아파트의 인위적인 산책로 어디에든 보란 듯이 서 있거나, 아파트 단지 가운데 눈에 띄는 곳, 혹은 입구 등에 위치해 있다. 팔각정의 기원은 고대의 조형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 문화권 내에서 원(圓)과 방(方)으로 천지를 나누어 이해하는 도형관인‘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서 원은‘신의 세상’, 방은‘인간이 사는 집’을 의미했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건조물은 원형과 방형의 중간도형, 즉 팔각으로 만들어졌다. 팔각형은 천지를 잇는 신성의 의미가 담긴 도형이기에 불탑과 같은 종교적 건조물에만 쓰였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지 2년 후 남별 궁터에 지어진 팔각 황궁우는 제국과 황권의 상징이자 이 나라에서 가장 존엄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후 2년 뒤 탑골공원 한복판에 팔각정이 세워졌다. 고종황제가 민중에게 허락한 팔각정은‘황제가 인정한 민권’의 상징으로 세워졌다.

 

 

이런 팔각정들은 현재 형태와 의미간의 관계도 없이, 사람들이 쉽게 이용 할 수 없는 장소에 배치되고 있다. 현재 지어지는 팔각정들은 오늘날 입식생활에 잔여물처럼 남은 외부의 좌식 문화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드워드 홀이 분류한 문화 공간 중 잔여 문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사방이 꽉 막힌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자리 잡은 팔각정은 효율적인 공간배치를 위해 벽이나 모서리에 붙어 있어 시선이 벽에 닿는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의 팔각정이나 정자는 주로 지나가는 길에 잠시 쉬는 곳으로 이용이 되며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없으며 주민 개인들의 이용률도 미비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파트 단지 내의 팔각정들은 거의 뿌연 먼지만 얹은 채 그 모양만 자랑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을내고, 보수하는 등 수없이 변신하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평상의 어떤 부분도 이어받지 못했다. 이렇게 팔각정은 형태에 내재된 기의는 무시한 채 전통적 기표만을 가져온 대표적 예시이다.

팔각정은 건축 도면 위에서 오로지 전지적 관점에 의해서 아파트 단지 내에 배치된다. 한 아파트 입구에 일본식 정원과 어우러진 팔각정의 웅장함은 이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를 대변해 주기 위해 서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서구식 아르누보풍의 담장과 난감한 기분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압도하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있는 공간을 찾는 이는 하루 종일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팔각정은 영화 <그녀에게>에서 피나바우쉬의 무용극 <카페뮐러>를 연상시킨다. 무대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의자와 탁자들 사이를 앞을 볼 수 없는 두 명의 여인이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움직인다. 한 남자가 그녀들이 앉으려 하는 의자를 재빠르게 옆으로 치워 버린다. 그녀들은 앉으려 해도 앉을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이 공연 속 의자처럼 팔각정은 사람들을 피해가면서 배치된다.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은 끝없이 교류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요일장이 서고 부녀회에서 바자회를 열기도 하고 주민회, 노인잔치가 벌어지기도 한다. 팔각정처럼 웅장하고 상징적인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진 않지만, 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일 자리를 만들어주고 휴식처가 되는 평상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적절한 교류를 불러일으킨다. 팔각정이 만약 이러한 자리, 평상의 바로‘그 자리처럼’일상이 일어나고 펼쳐지는 곳에 배치된다면, 이 팔각정은 시선을 모으고 일상과 섞여 돌아가는 물건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물의 배치는 우리의 시선을 닿게 하기도 하고, 엇갈리게 하면서 우리의 일상적 존재성과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은밀하게 개입하고 있다.

 

1. 평상1에서 바라본 삼선동의 전경

2. 평상2에서 바라본 삼선동의 전경

3. 팔각정에서 바라본 삼선동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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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마리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간과 일상이 만들어 내는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 글을 준비하면서, 오늘날 사람들이 디자인된 삶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자생적으로 디자인된 일상의 삶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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