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작업 ; 형태

‘형태’를 창작하는 세 가지 방법, 세 가지 시선, 세 가지 형태.

강병융 소설가와 지콜론 에디터이자 사진작가인 박현진,

지콜론 디자이너 류보미가 면을 대상으로 세 가지의 창작을 편다.

이 글은 순수 창작 소설이며,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여진다.

글 강병융 | 사진 박현진

 

 

사실 언제 제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진 않습니다.

그저 어렸을 적이라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 말은 못했던 것 같고, 걷고 뛰는 것은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거울을 하나 발견했고 그 앞에 섰지요. 꽤 큰 거울이었어요. 화장대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 앞에 서서 거울 안을 보았더니, 누군가 서 있더군요. 키는 작았고, 얼굴은 별로였어요. 처음에는 그게 저인지도 몰랐지요. 거울 속의 인물은 못생겼다기보다는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사람들과 너무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거든요. 거울 속에서 제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거울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무리 다시 보고, 또 다시 보아도 거울 속에서 저를 따라했던 인물이 ‘나’답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다 네모나게 생겼어요.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형까지도 다 네모, 네모, 네모. 외가친척들, 친가친척들 모두 사각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사각이 사각을 만나 자식을 낳았으니, 자식들도 다 사각으로 태어난 것이지요. 어릴 적부터 전 사람의 얼굴은 다 네모났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일가친척임을 너무 쉽게 알아챘고, 가족들 사이에서는 그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들 여겼어요. 그런데 저만 예외였던 것이죠.

사실, 거울을 만나지 않는 한 자신의 얼굴을 볼 일은 없잖아요. 그래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당시 어렸지만 꽤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전 막연하게 네모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었겠죠. 마치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불러왔던 음치가 자신의 진짜 목소리는 모른 채 고성방가만을 일삼는 것처럼, 저도 제 외모를 모르고 세상 사람들이 다 네모나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적어도 제 눈에 보이는 것들, 제가 봐왔던 사람들이 다 네모였으니까요. 제가 네모지게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거울보기를 무척이나 싫어했지요. 가족들은 ‘아유, 이쁘다’라고 말해줬지만, 전 직감적으로 그게 거짓임을 알았어요.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출생의 비밀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물론, ‘비밀’, ‘출생’ 따위의 말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직감한 것이지요.

나이를 더 먹고, 말도 하게 되고, 생각도 하게 되고, 물론 걷고 뛰는 것에 더욱 익숙해져서 학교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세상에는 네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알게 되었지요. 맞아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도형의 얼굴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름대로 묶음이 형성되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초롱이네 가족은 전반적으로 둥글넓적했고, 철순이네 식구들은 대체로 별모양의 얼굴을 달고 다녔어요. 기남이네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아빠도, 엄마도, 기남이도, 기남이 동생 기순이도 다 사다리꼴이었어요. 크기는 조금씩 다르고, 기순이는 평행사변형에 가깝긴 했지만, 이래나 저래나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었지요.

더군다나 각양각색의 모양을 하고들 있었지만, 저와 비슷한 얼굴형을 가진 사람은 없었답니다. 저도 그들의 무리 안에 들어가면, 그저 그런 도형 중의 하나, 그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왠지 모르게 외로웠어요. 가족과도 다른 얼굴,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탓이었지요.

그러니, 저는 더 혼란스러웠지요. 도대체 왜 나만?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하지만 고민이라는 것은 대중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잖아요. 고민이라는 악마는 본질적으로 강한 존재가 아닌 까닭에 비겁하게 혼자 남은 자들에게 접근하는 속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평소에는 친구들과 룰루랄라 잘 놀았어요. 집에 와서도 가족들과도 밥 잘 먹고, 후식까지 잘 먹고, 텔레비전도 흥이 나서 잘 보았지요. 그런데 자기 전에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는 순간, 네모의 악마가 찾아왔지요.

- 호호호, 넌 왜 얼굴이 네모가 아니지? 왜? 왜? 왜?

그 웃음소리도 듣기 싫었지만, 더 싫었던 것은 마지막에 무심하게 세 번씩이나 반복하는 ‘왜?’ 였지요. 사실 저도 그 이유를 몰랐거든요. 물론 부모님께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왜 나만 이런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치 합창단원처럼 입을 딱 맞춰 이렇게 대답하시곤 했어요.

- 내가 보기엔 잘 생기기만 했구만!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전 분명히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를 물어본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굳이 미추를 구분하자면, 분명히 저는 추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네모난 동생과 형에게도 제 고민을 몇 번 털어놓았는데, 그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 정말 네모가 좋아? 내 별명이 뭔지 알아? 참 크래커야! 좋겠냐? 좋겠어? 다행인 줄 알아! 다행인 줄! 쯧쯧쯧!

형이 이렇게 말하고 나면, 동생도 지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지요.

- 형아! 정말 복 받을 줄 알아라! 그리고 큰형도 다 똑같아! 똑같아! 참 크래커 얼마나 귀엽냐? 난 네모피자야! 네모피자! 크고, 네모나고, 뒤통수까지 납작하다고 네모피자라고. 진짜 형들이 다들 왜 그러냐?

이런데,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홀로 외로이 밤마다 고민의 악마와 싸우는 수밖에요. 그저 그 알 수 없는 출생의 비밀이 풀리길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언젠가 거울을 본 날부터 시작되었던 이 ‘반(反)사각얼굴’의 고민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속 이어졌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도형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도형들을 그리는 일을 즐기게 되었고요. 그것들을 그리면서 고민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제 고민을 떠들고 다니지도 않았어요.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고민이 있기 때문에 남의 고민까지 들어줄 수 있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형은 네모난 얼굴이 고민이었고, 동생은 크고 네모난 얼굴이 고민이었으니까요. 사실 저도 그들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고요.

얼굴은 네모나지 않았지만, 얼굴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갔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과 같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도형들을 열심히 그리다보니, 디자인을 전공할 수 있었어요.

대학이라는 곳에는 정말 다양한 얼굴들이 있더군요. 물론 고등학교 때에도, 중학교 때에도, 초등학교 때에도 다양한 얼굴들이 있었지만, 대학에서 정말 다양한 얼굴들을 만났습니다.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칠각형, 팔각형, 구각형, 원, 타원, 별모양, 반달, 초승달 등등등. 가끔 사각형 선배를 보면, 가족 같아 너무 친근하기까지 했답니다. 별모양의 학생들을 보면서는 초등학교 동창 철순이를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한 다양함 속에서 저는 조용히 묻혀 있었어요. 아니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긴, 돌이켜보니 제 얼굴 모양이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에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도 같아요. 그러나 전 늘 생각했답니다. 세상에 나와 닮은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그리고 정말 그런 존재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물주는 도대체 어떤 이유를 나란 인간을 요 모양으로 만들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가족들과 다르게, 그 누구와도 같지 않게. 술자리에선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잠시 잊기도 했지만, 시험기간에는 공부하랴, 축제기간에는 흥겨워하랴, 종종 고민을 접어두기도 했지만 고민이 사라지진 않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선 정말 고민할 틈이 없더군요. 그래, 그냥 생긴 대로 살자구나, 했었지요.

제대하던 해, 가을이었어요.

머리는 제법 자라 군인 티를 벗었고, 2학기 때 복학을 한 터라 정신없이 대학에 적응 중이었어요. 선배라고 부를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고, 낯모르는 후배들이 종종 제게 인사를 하곤 했어요. 젊은 그들을 보면서, 그들도 또 저도 대학생인데 왜 이리 다를까, 생각을 했었죠. 여전히 가족들과 다른 제 얼굴 모양에 대해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먹고 사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얼굴모양에 대한 고민은 마음 구석으로 밀어두었어요. 그리고 낮에는 작업실에서 계속 도형들을 그렸고, 저녁에는 도서관에 터를 잡고, 도형처럼 생긴 외국말들을 반복해서 그렸어요. 그 무렵, 형은 참 크래커를 만드는 회사와 경쟁사인 제과회사에 입사해, 안티 참 크래커를 만들겠노라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동생은 군대에 있었고요. 네모피자 같았던 동생은 레고처럼 더 크고 단단해졌어요. 언제나처럼 그냥 시간은 흘러가겠지, 그래야 삶이고, 그래서 삶일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어차피 살 거면 다소 열심히 살아보는 것도 좋겠거니, 했었지요.

그날, 바로 그날, 가을바람은 좀 쌀쌀했고, 낙엽들은 달력 속 그림처럼 떨어져 내렸어요. 캠퍼스의 가로등은 적당한 조도로 낙엽들에게 운치를 더해줬어요. 산책하는 연인들도 보였고, 가을의 쌀쌀함을 술로 잊으며 추억을 쌓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었어요. 저처럼 도서관에서 나와 귀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게 흘러가 버릴 날들 중 하루가 될 거라 여겼지요.

낙엽 하나가 제 코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자연스럽게 낙엽을 쳐다보게 되었어요. 낙엽은 휘휘 날아서 공중에서 삼각형을 몇 번 그리더니 등나무 벤치 쪽으로 갔어요. 제 시선도 휘휘 돌아 등나무 벤치로 향했지요. 그 벤치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낙엽은 벤치에 떨어지는 대신, 누군가의 머리에 착륙했어요. 누군가는 짜증이 잔뜩 담긴 손짓으로 낙엽을 쳐 냈어요. 그리고 왝왝거렸어요. 첫눈에 봐도 만취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여자였어요. 왝왝왝.

여자는 토하고 있었지요. 저는 그 쪽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생각하는 중에 이미 다리는 움직이고 있었어요. 왝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이 왝왝거리는 것과는 다소 다르군. 아름답기까지 한 걸. 분명히 토하는 것 같았는데, 악취는 나지 않았어요. 악취 대신 풍기는 이 냄새는 혹시 향기? 여자는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계속 토사물을 뿜어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책 한 권이 보였어요.

‘디자인의 개념과 원리’

전 그녀의 등을 두드려줬어요. 등 두드리는 박자에 맞춰 계속 게워냈어요. 한참을 그러고 나더니, 그녀가 고개를 돌렸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을 ‘디자인의 개념과 원리’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녀는 웃었어요.

저 또한 웃었어요.

그랬답니다. 바로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저와 닮아 있었답니다. 정말 세모난 얼굴. 저도 세모난 얼굴. 우린 모두 세모난 얼굴. 세모 같은 우리 얼굴. 전 어릴 적 봤던 거울 속의 ‘내’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그 때 거울 속 ‘나’보다 그녀가 더 ‘나’다웠던 이유는 뭘까요? 우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어요. 가을바람이 좀 더 쌀쌀해진 것 같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았어요.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가 그냥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요. 아니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어요.

- 저, 괜찮으세요?

그녀가 웃었어요. 세모난 그녀는 입모양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웃었지요. 저도 함께 웃었어요. 아마 저도 그렇게 웃었을 거예요. 삼각형 입을 만들어서. 잠시 뒤, 그녀가 말했어요.

- 저, 우리 과 선배님이시죠?

그렇게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해 겨울 형은 참 크래커의 대항마로 ‘삼크래커’를 만들었어요. 물론 세모난 모양이었고, 그녀와 나는 특별히 그 크래커를 많이 사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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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1994년, 존 드 벨로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 명지대 영문과에 입학하다. 1998년, 타란티노처럼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어서 복수전공으로 문예창작학 선택하다. 2000년, 하루키같이 소설을 써보고 싶어서 대학원에 입학하다. 하다 보니, 박사과정까지 수료하다. 2005년,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의 인간편 써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상상인간 이야기』라는 소설을 출간하다. 2006년, 마르키 드 사드를 따라해 볼 요량으로 소설집 『무진장』을 발표하다. 2006년, 고골 소설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 모스크바 국립대 박사과정에 입학하다. 2010년, 고골 대신 자먀찐만 잔뜩 읽고, 박사학위 받아 귀국하다. 2011년, 레프 똘스또이가 아닌, 알렉세이 똘스또이를 번역하다. 가을부터는 한남대에서 학생들과 문학 이야기를 나누기고 있다. 언젠간 ‘강병융’다운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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