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페다고지의 디자인 산책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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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교감의 사물, 담:

단선적 디자인과

중의적 디자인에 대한 단상

/ 김영남

 

 

 

“타자에의 존중은 타자의 디자인 문화 및 그 내적 가치들의 수용을 시사한다.”- 기 본지페


# 경계와 통로 _ 담
담은 안과 밖, 그들과 우리를 나누어 주는 경계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높이에 따라 그 경계는 소통과 연결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조선조의 마을을 걷다 보면 키 높이를 넘어가는 담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양반집 담장도 고만고만, 서민들의 담은 싸리 울타리로 되어 있어 이 담 위로 떡그릇이 오가기도 하고, 개구멍이 있어 무단침입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하긴 지금 이런 담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다. 인구 천만이 넘게 모여 살고,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그런 소통의 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생경한 일일 테니. 하지만 오래 묵은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들이 형태는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기에 서울의 지형도는 여전히 복잡하고, 난해하고, 꼬불꼬불한 역사의 미로를 걷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성북구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지닌 두 개의 담이 있다. 완벽을 지향하는 미적 욕구가 충족된 담, 그리고 허술하지만 무언가 생명이 깃들이고, 열려있는 이야기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담이다. 다른 형태를 하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두 개의 담에 대한 담론을 시작한다.

# 성북동 _ 이상적 미의 추구 _ 단선적 디자인 

성북동 1 : 높은 곳의 존재 _ 단선적 디자인

 

성북동 2 : 형태의 이상적 표현 _ 유토피아

 

성북구 성북동의 담장은 높고 웅장하다. 그 담은 내부를 안전하게 차단하고 보호한다. 차단과 경계의 기능을 훌륭히 소화하는 그 담들은 사물과 사물이 더하여진 형태의 미감이 이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가지각색의 벽돌과 대리석이 가진 화려한 무늬로 자연의 물성이 인위성을 빌어서도 아름답게 구현되는 것을 본다. 그 속에서 보호받는 집들은 우리가 이상향의 집을 그리거나 이야기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뾰족 지붕에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몸체로 서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적 디자인의 발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데아적 형상을 지상에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상적 욕망이 발현한 미감이 집중되며 무한한 상상력도 함께 유도하게 만들지만, 그 완벽함 때문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북동의 담들은 이상적인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며, 차단의 기능과 아름다움만 지닌 채 다른 것들과 그 어떠한 것도 주고받지 못하는 단선적 디자인 형태를 보여준다. 그 이상화된 물질성의 완벽함으로 거기에서는 담장에 머무는 햇살도 볼 수 없으며, 동네의 나무들도 오히려 그 인공의 완벽함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 담들의 높이의 당당함은 자본의 집적만이 주는 위압이 아니라 그 담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들의 내적 차단력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상징이기에 성북동의 마을은 표백화된 이상적 미의 집합체로 다가올 뿐이다.


 

# 장수마을 _ 개입과 기록의 흔적 _ 중의적 디자인

삼선동 3 : 자신의 생활 공간을 스스로 가꾼 형태 _ 지속적 유대

 

삼선동 4 : 장소성이 형성되는 담 _ 중의적 디자인

 

성북구 장수마을에서는 낮은 담을 통해 집안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누가 사는지, 어떤 화분이 있는지, 어떤 강아지가 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곳의 담은 너와 나를 확연히 구별하는 경계가 아니라 단지 저기는 네 집, 여기는 내 집이라 말해주는 상징적인 구획으로만 존재한다. 감출 것이 없기에 높게 쌓지 않아도 되는 일차원적 기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에 오히려 호흡이 편한 것은 굳이 필자만의 감성이 아닐 것이다.
장수마을의 담에서 성북동이 지닌 궁극적인 미의 형태를 찾기는 어렵다. 조형성이나 물성의 진수를 찾아가는 노력은 자본의 지원이 없다면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이 사는 공간을‘장소성을 지닌 어떤 곳’으로 만들려는 디자인적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삼선동 마을 귀퉁이에는 70년대 개발시대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회색 시멘트 벽에 선명한 마름모꼴의 무늬가 들어간 담벼락이 있다. 그 집의 주인이 그 낡고 지저분한 시멘트 덩어리에 마름모꼴의 흰 무늬를 칠하는 순간, 그의 담장은 디자인적 행위를 통한 이야기로 전환되어 그의 역사에 저장되고, 설사 삼선동이 개발되어 사라진다 해도 그의 기억과 존재 속에 각인되어 남겨질 것이다.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장수마을의 담은 인간과 물성 사이의 디자인적 행위를 통한 다양한 감성이 자유롭게 넘나듦의 자취로 형성되어 있다. 전문 디자이너의 손을 빌어 물성이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뽑아낸 것이 아니더라도, 담이라는 고유의 기능에 사람의 이야기와 여러 감각이 머물면서 공감각적 디자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낮기에 경계도 되지만 소통도 되고, 시야의 높이에 햇볕이 머무는 것이 보이고, 벽을 타고 오르는 푸른 것들도 선명히 보인다. 이렇게 여러 것들과 소통하면서 장소성을 만들어가는 이곳의 담은 나누는 동시에 서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에‘중의적 디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성북동의 그 높고 화려한 담들이 디자인 전문가들이 만드는 물성에 대한 화려한 상찬이라면, 이런 중의적 디자인은 그런 상찬 대신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통을 버무린, 일상의 자발적인 참여만이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삶이 있는 곳에는 디자인이 있다는 아주 평범한 법칙을 보여주는. 

 

# 삶, 욕망, 그리고 스펙터클

안채로 통하는 대문만 가린 하회마을의 담

 

삼선동

 

성북동

 

> 타자에 대한 존중 _ 그것은 모든 존재에게 그 내적가치를 내보일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 삶의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간다. 가장 원시 단계인 생리 욕구와 안전욕구가 채워지면, 사회적 욕구로 발전하고, 그것이 점차 자아실현과 자아존중의 욕구 충족을 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욕구들을 만족시키다 보면 삼선동의 호박잎이 올라가는 스티로폼 화분의 작은 충족부터 성북동의 화려한 대리석 담장까지로 펼쳐지는 욕망 충족의 스펙트럼이 생겨난다.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그 욕망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져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욕망의 편중으로 인해 우리의 도시 디자인이 강렬한 자극의 스펙터클한 공간만 만들어 낼 때, 감각의 실무율의 법칙에 따라 자극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만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비 콕스는 도시 재개발사업의 결과로“장소와의 지속적인 유대”를 많은 사람이 상실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화려하고 멋진 물리적 공간이 존재해도 자기의 감성, 마음이 숨어들어갈 만 한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속되지 못한 공허함을 지우기 위해 스펙터클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장소와의 유대감의 상실은 자연히 정서적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그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보다 더 강력한 것을 욕망하게 되고 반복되는 악순환의 그림자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도시 곳곳에 보여지는 강한 스펙터클의 고리는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여태까지 우리는 성북동으로 표상되는 이상적인 형태와 미감을 가진 스펙터클의 디자인만을 좇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과 물성과 인간이 서로 관계하고 유대하는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 서로 교감하는 디자인 미덕 _ 중의적 디자인에 대한 존중
성북동의 담은 그 형태가 아름답고 디자인 체계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것들이 관계할 여지가 없으며, 다른 것과 소통하는 관용은 없다. 반면 장수마을에는 이상향에 가까운 형태미는 없다. 그러나 사용자에 의해 기능을 만들고 진화하면서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교감하게 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디자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고 지향한다. 인간의 미를 향한 갈망, 완벽한 물성의 발현을 위한 욕구충족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교감과 소통을 통한 유대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융합하는 방법에 대한 대안으로 “타자성에 대한 존중”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동과 장수마을은 서로 타자화하면서 존중하는 법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성북동의 그 아름다운 미감의 지향만을 디자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월의 축적이 이루어낸 개인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디자인을 추방하면서.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디자인 형태의 다양성에 대해 대화를 해나가야 할 때이다.
이미 우리 안에 작은 단초는 존재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은 간소한 구성으로 장소성을 이루는 소통과 교감의 디자인을 이상적 미감과 함께 풀어냈다.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의 한 양반가옥에는 담이 없다. 하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이 엄격한 조선시대라는 시간적 특성과 그리고  법도를 중시하는 고장인 안동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지켜야 할 법이 있었다. 그래서 그 댁의 주인이 고안한 것은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만 바깥쪽에서 보이지 않게 약 2미터 길이의 담을 쌓아 가리는 것이었다. 그 작은 방법 하나로 이곳 주인은 원하는 소통과 조선시대 사대부의 체통을 함께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작은 예들이 삶과 유대하는 도시 공간 디자인의 귀감적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장소와의 지속적인 유대를 이루어낼‘소속감’을 만들어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함을 통하여 다양한 일상을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인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스펙터클이 더욱 거대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의 도시디자인의 막힌 담을 넘어 풍부한 교감과 소통이 발현되는 디자인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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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더 넓은 이론적 사고와 경험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서는 디자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 배우는 삶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이 같은 틀 속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공예와 디자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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