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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⑫ 디자이너가 소설가로 살아갈 때 / 강구룡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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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⑫ 디자이너가 소설가로 살아갈 때 / 강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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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⑫

디자이너가 소설가로 살아갈 때

나는 디자이너이다. 책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요즘은 오디오의 인터페이스도 디자인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몇 군데 옮겨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다루는 디자인을 하다 보니 조금은 다른 것도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그림이 없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소설은 디자인과 다른 방식으로 보이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형태와 이미지를 글을 통해 빛의 속도로 재현하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적인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머릿속의 이미지와 형태는 디자인보다 자유롭고 선명할 때가 있다. 글자라는 최소한의 약속된 기호로 보는 이의 경험에서 최대한의 상상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 만화의 이해』*를 읽어보면 가장 단순한 카툰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이입시킨다. 마찬가지로 글자라는 단순한 비주얼이 가장 많은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는 디자이너와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만, 독자에게 상상력의 형태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단지 몇 년 동안 일을 하며 어떤 형태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다루면서 느낀 지루함 때문이다. 오랫동안 컴퓨터 화면 속의 글자를 키우고 줄이고, 화려한 사진이 가득한 페이지를 만들다 보니 아무 것도 없는 빈 종이의 설렘이 그리워졌다. 단지 검은색 글자만 가득한 소설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듯 눈과 마음이 정화되었다. 노트북을 들고 밖에 나가기보단 일요일 하루는 시간을 내어 책 한 권을 대여섯 시간 읽었다. 그때부터 집요하게 본 책들이 알랭 드 보통의『 불안』,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 아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다. 추리소설부터 수필, 세계문학까지 끌리는 대로 읽었다. 주로 소설책을 많이 읽은 이유는 다른 책에 비해 그림이 거의 없어서이다. 특히 두꺼운 하드커버에 글자만 가득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 아이』는 제목처럼 컴퓨터 RGB 컬러에 죽어가는 내 눈을 검은색 잉크로 여섯 시간 동안 치유해 주었다. (이 책은 의학서적은 아니고, 추리소설이다.)

조금씩 글자를 읽어나가는 재미에 빠지자 소설 읽기는 소설 쓰기로 발전하였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수필과 일기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큰 차이가 없지만, 디자이너가 쓰는 글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가 서체 형태의 차이를 구분하는 감각은 소설을 읽고 쓰는데 큰 이점이 된다. 예를 들어“ 이번 소설은 윤고딕 320과 윤고딕 350으로만 써 내려가겠어”하고 글쓰기를 시각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구체시처럼 소설을 한 페이지 단위로 쪼개어 글의 형태와 내용을 시각적으로 일치시킬 수도 있다. 문학에서 구분하는 단어와 문장, 문단 단위뿐만 아니라 왼쪽정렬과 오른쪽정렬 그리고 자간 조절도 글을 쓰는 단위가 되는 것이다. 마치 똑같은 네모 칸의 원고지가 아니라, 작가만의 규칙과 단위를 만들어 원고지 모듈을 새롭게 사용하여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또한, 글줄의 형태를 미리 설정하고 게임을 하듯 글의 내용을 글줄의 모양에 맞추어 쓸 수도 있다. 마치 주형 틀에 글을 녹여내는 것처럼.

책의 표지를 디자인해본 경우 표지의 디자인을 미리 완성하고 역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기행을 펼칠 수도 있다. 다소 엉뚱하지만, 글이 형태가 되고 책의 표지가 내용이 되는 것이다. 책 표지의 이미지가 한 편의 시가 되어 글의 내용을 품고, 글은 주석처럼 되어 시적인 암호를 풀어내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만 쓰는 작가와 달리 디자인을 해본 디자이너는 또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쓸 수가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가능한 것은 표현의 형식과 내용이 서로 관계가 있으며 서로 역할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콘텐츠를 내용에만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지금은 전문화되어 책 한 권 만드는 일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만들지만, 과거 디자이너나 작가의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제본하고 표지도 만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는 디자이너가 글을 쓰고 글 작가가 표지를 만드는 식으로 역할을 바꾸어 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역할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각 분야가 매우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형식과 내용을 만드는 역할이 직업적으로 구분되어 글 작가가 디자인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책의 표지가 글의 내용을 함축한다’는 생각은 디자이너의 순진한 믿음일 수 있다. 분야마다 전문가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여 역할을 완전히 탈바꿈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제약에도 내가 소설을 쓰는 것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 생각을 한번에 들어내 보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글은 그것을 읽지 않는 이상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 수 없다. 더불어 나의 개성을 어떤 형태로 보여주지 않고 누구나 사용하는 바탕체로 표현하므로, 외형상 나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지 않는다. 즉 글은 디자인보다 덜 직접적이고 덜 표현적이다. 나의 스타일이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나를 감추고 내용에 충실할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소설은 디자인에 비해 경제적이기도 하다. 구름을 표현하는데 게티이미지에서 이미지를 찾고 그에 알맞은 서체를 찾아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십 번 왔다 갔다할 필요도 없다. 그냥 키보드에

‘ㄱ+ㅜ+ㄹ+ㅡ+ㅁ’으로 다섯 번 타이핑을 하면 구름이 완성된다. 다만, 그것은 누구나 만들어내는 구름이므로 형용사와 부사로 나만의 구름을 좀 더 꾸며주면 된다‘. 바닐라 향이 나는 구름’으로 좀 더 개인화를 하는 것이다.

또한,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므로 내가 쓴 글이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현실에서 금기시되는 일을 하고 멋지게 사기를 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프랑스를 몇 문장으로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런 점이 매우 재미있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면 많은 이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조금 싫증이 난 디자이너가 있다면 한 번쯤 글로 표현해보길 권한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예산과 기술적 한계에 고민해본 디자이너라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하얀 모니터 화면이 그리울 것이다. 특히 글자의 형태나 어떤 폰트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버리고, 키보드 자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디자인을 할 때와 달리 사용해보지 않은 감각을 사용하게 된다. 이미지에 흠뻑 빠져 있던 눈이 검은색 글자에 집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글을 계속 쓰다보면 어느 순간 디자인과 유사한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글로 이야기를 쓰는 것과 디자이너가 콘셉트를 만들어 형태를 만드는 것은 머릿속의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결국, 글을 쓰는 것도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이다. 쓰는 도구가 달라질 뿐 소설을 쓰는 것은 디자인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형적으로 이어져있는 글도, 디자이너가 포토샵의 레이어를 겹치듯 다양한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수많은 복선으로 겹쳐져 있다. 서체를 고르고 추상적인 도형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소설가가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며 풍경을 묘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디자이너가 소설가로 살아갈 때,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허구적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자유는 제한된 조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삶에 큰 활력소가 된다. 그러므로 소설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디자이너의 이중생활을 멋지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Understanding Comics)』, 김낙호 옮김, 시공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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