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사 바로가기

people
강력한 감정 Bill Dresselhaus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기본 정보
people
강력한 감정 Bill Dresselhaus
수량수량증가수량감소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선택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people
강력한 감정 Bill Dresselhaus
수량증가 수량감소 0 (  )
total 0 (0)

이벤트

g: People

강력한 감정

애플에서 1978~1983년까지 프로덕트 디자인 총괄을 지낸

빌 드레셀하우스(Bill Dresselhaus)를 만났다. 그는 애플에서 애플Ⅱ와 매킨토시 중간 시점에 론칭되었던 리사(Lisa)(1979년)의 제작을 총괄하며 컴퓨터는 물론 주변기기 사용성의 효율을 위한 구조를 연구, 제품화한 바 있다. 당시 그가 경험한 스티브 잡스, 애플과의 에피소드는 이 시대 IT 산업의 역사였으며, 그 소소하면서도 거대한 이야기를 빌 드레셀하우스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에디터 이찬희, 박경식 통역 박경식 번역 Ana Lee 사진 박현진

 

Bill Dresselhaus

빌 드레셀하우스는 경영, 디자인, 기술분야의 40년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제품 디자인 및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애플, 휴렛팩커드, EDS, 펜텍그룹, KIDP, LG화학, 인포커스 등 다수의 클라이언트와 긴밀하게 일한 바 있다. 현재 홍익대학교 초청 교수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Bill Dresselhaus has over 40 years of broad and eclectic experience in many areas of business, design and technology, especially in product design and development. His client list includes Apple Computer, Hewlett-Packard, EDS, Pantech Group, KIDP, LG Chemical, and InFocus, among many others. He is currently a full-time Joint Invited Professor of Design at Hongik University in Seoul, Korea.

스티브 잡스에 대한 교수님의 전반적인 견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그의 두꺼운 전기를 읽었어요. 당신도 읽었나요?

네, 방금 킨들에서 다운로드 받았어요.

한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어요.

그렇게 들었어요. 당신이 방금 얘기한 것, 그게 바로 내 얘기입니다. 그는 더 많은 청중을 가지게 될 거예요.

그 책을 읽어봤는데 스티브 잡스는 매우 직관적인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들었죠. 반면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록 가끔은 그것이 틀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이 옳다고 심어주기도 하고요. 스티브의 전기에서는 이것을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led)이라고 말하더군요. 아무튼 사람들은 실제로 옳든 아니든 스티브의 말이 옳다고 믿는 것 같았어 놀라웠어요.

그래요, 만약 당신이 스티브의 이전 일들에 대해 읽었다면 알고 있겠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데 소질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틀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을 신뢰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그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사랑하는 일에 대한 극단적인 열정. 그 전형적인 보기가 스티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완벽한 제품, 절대적으로 환상적인 제품에 대한 극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 때로는 자기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가차없이 대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는 불완전한 어떤 것에도 절대로 만족하지 않았고 완벽에 대한 극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몹시 싫어했었죠. 스티브를 위해 일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완벽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이 일하는 것이 아주 쉬운 사람들도 있어요. 난 당신이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지 간에 여전히 열정적일 수 있고 완벽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인 편이 항상 더 좋겠지요.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교수님은 그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아내와 얘기를 나눴었는데 우리 둘 다 스티브 잡스에게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병색과 외모에 대해 너무 많은 뉴스들이 나돌았잖아요. 아주 슬프기도 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망한 후에 그는 더 중요해지고 유명해지고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있을 때 그는 매우 비밀스러웠습니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않는 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애플에 대한 모든 것이 비밀스러웠고 스티브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이 비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그의 전기가 출간됐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스티브가 살아있었을 때라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거절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의 경험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의 제품 디자인 방식을 모방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내 생각엔 그의 유산은 더욱 진전될 것이고, 더 잘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가 어떤 경영자였는지 어떤 선각자였는지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려질 것이며, 그것이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게 될 것입니다.

리사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나요? 자서전에서 리사라는 이름을 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던데요.

리사는 그의 딸 이름입니다. 난 원래 애플Ⅱ의 디자이너인 제리 맨녹이 고용했고 리사의 메인 제품 디자이너로 채용되었었죠. 최근에 누군가에게 말했었는데 누군가가 “애플이 실패한 제품이 무엇이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피곤합니다. 사람들이 항상 애플 실패작의 사례로 리사를 들먹이면 정말 화가 나죠. 내가 그 일을 할 때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그건 30년 전의 일이에요.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그들은 모릅니다. 시장에서 리사는 실패작이었어요. 너무 커서 마케팅 수단을 잃었고 소프트웨어 또한 하드 드라이브를 추가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가격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나 가격적으로 마케팅 수단을 잃었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킨토시는 미니 리사라고 할만큼 리사에서 모든 걸 가져왔어요. 리사의 산업디자인,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전기장치들을 좀 더 작은 상자에 포장한 것이 매킨토시가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리사가 너무 커서 시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기술적인 성공으로서는 애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단지 그 가격과 스케줄 내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거였고 그렇게 리사는 매킨토시의 모체가 된 것이죠.

당시는 거의 미지의 분야였네요.

실제로 70년대 중후반은 실리콘밸리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전에는 대부분 휴렛팩커드(HP)였어요. 우리들 중 다수는 HP에서 애플로 옮겨왔고 우리는 그 전에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던 것들을 리사에 시도했습니다. 소비자를 위해 완전하게 통합된 정교한 데스크탑 컴퓨터가 실제 디자인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전자장치, 기계적인 것 그리고 제품디자인 또한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키보드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재설계했죠. 그리고 이것은 원래 스티브 잡스의 꿈이었습니다. 리사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졌고 너무 고가였습니다. 리사가 통제불능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리사 그룹에서 떠났고 매킨토시를 만들기 시작했죠. 실제로는 그가 그룹에서 쫓겨난 거였죠. 그래서 그는 독립해서 매킨토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내게 와달라고 요청했고 매킨토시에 대해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매킨토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고 난 사이즈가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리사와 비슷하게 보인다는 생각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몇 가지 일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스티브는 소규모 팀으로 일하는 것에 매우 능했어요. 그런데 리사 팀은 너무 커져 있었지요. 그는 소규모 팀을 경영하고 새로운 일을 착수하는 것을 아주 잘했습니다. 내가 짧은 시간 그와 일했을 때에 그는 20대 초반이었어요. 그는 아직 성숙되지 않았었고, 매우 충동적이었고, 정열적이었고, 좌절감을 느꼈으며, 또한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것이 애플의 시작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시작이었던 70년대로 돌아가서 한 가지 더 얘기한다면, 당시 사업을 지배하던 사람들은 주로 전자 기술자들이었어요. 소프트웨어는 시작단계였고, GUI(graphical user interface)가 막 발명된 시기였어요. 그래서 주로 관리자들 그리고 경영자들과 같은 책임자들은 대부분 전자 기술자였습니다. 나같이 제품디자인을 하고 산업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액세서리로 간주되었죠. “전자를 해라, 그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나서 애플이 외관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하자 기존과는 달리 더 많은 회사들이 내부와 외부 모두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단지 소프트웨어나 전자만이 아니라 산업디자인과 제품디자인도 더 많은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고요. 지난 20년 또는 30년 동안에 걸쳐 애플이 제품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촉진시키는 데 정말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별로 얘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품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웹 상에 흑백 사진이 한 장 있어요. 리사 개발팀의 사진인데 우리 5명이 그 팀에 있었어요. 그때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비전을 실제 제품에 집어 넣는 놀라운 일을 했었고 그건 거의 버려졌습니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유일한 책은 『애플 디자인 북』인데, 매우 큰 책입니다. 그 책에서 난 3인자에요. 그건 놀라운 일입니다. 스티브 잡스, 제리 맨녹, 빌 드레셀하우스. 애플 디자인 팀의 20년 역사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매킨토시를 비교하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프로그램처럼 별도로 살 수 있으며 리눅스에 설치하거나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개방적입니다. 애플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는 매우 통제적이고 폐쇄적인 환경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당신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애플의 초기 시절에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앨런 케이는 컴퓨터 과학의 천재입니다. 그 초창기 시절에 앨런이 스티브에게 말했어요. “만약 당신이 완벽함을 원한다면, 만약 당신이 정말로 절대적으로 최고의 제품,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그리고 디자인을 원한다면 당신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제어해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방식으로 하면 안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했습니다. “난 소프트웨어를 가졌고, 하드웨어를 가졌고, 그 제품을 가졌다.”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매킨토시에서는 그것이 통했고 매킨토시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나았던 이유는 그 세 가지 모두를 제어하거나 적어도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를 제어할 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함께 작동 될 수 있도록 하드웨어를 디자인하는 거에요. 거기에는 단 하나의 하드웨어와 단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라면 델, HP, 소니와 함께 일해야 할 겁니다. 즉, 이 말은 수 백 종류의 다른 PC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 같지 않아요. 우리는 흔히 PC라고 합니다. 델, HP는 아름다운 하드웨어를 만듭니다. 문제는 윈도우입니다. 바로 소프트웨어에요. 윈도우는 각각 다른 플랫폼 상에서 실행시킬 때 절대로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애플은 완벽한 조합으로 그걸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말 애플은 복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그걸 즉시 없애버렸어요. 왜냐하면 그게 그의 철학이었으니까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는 컴퓨터는 이러 해야 한다는 비전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비전은 내가 그를 위해 일했을 때 그대로이고, 그가 떠날 때 그대로입니다. 항상 같습니다.

팬(fan)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우리는 리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고 내가 디자인 검토를 위한 회의를 소집했었어요. 제품디자인 초기 단계였는데요. 난 영업, 마케팅, 제조, 생산, 구매, 경영관리, 엔지니어링, 전자기술 부서 모두가 참석하도록 요청했고, 대략 20명의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그들도 리사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팀의 디자인 매니저였고 켐 캠벨이 수석 엔지니어였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때는 영사기가 없었던 CAD 이전이었고 우리에겐 애플Ⅱs가 있었어요. 그래서 켄이 리사의 전면부의 개념도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도면상에 점이 찍힌 라인박스가 있었어요. 스티브 잡스는 어떤 애플의 제품에도 냉각 팬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냉각 팬이 비용이 많이 들고, 시끄럽고, 고장이 자주 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냉각되길 원했어요. 그걸 자연냉각이라고 합니다. 켄이 리사 디자인과 모든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갑자기 스티브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도면상의 그 작은 상자를 가리키며 “이건 뭐지?”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켄이 리사에 팬이 없도록 아주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 혹시 팬이 필요하게 된다면 거기가 팬이 들어갈 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스티브는 바로 나가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미팅을 끝냈고 내가 나갔을 때 그가 머리를 숙이고는 벽에 기대 서있었어요. 아이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매우 불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는 리사에 팬이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리사를 제어하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워했죠. 왜냐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플Ⅲ에 앞서, 애플Ⅱ는 스티브 자신이 추진하였고, 그는 그렇게 하길 좋아했어요. 이건 그가 이전에 해냈던 것보다 컸고 그래서 그는 제어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켄 캠벨은 뛰어난 엔지니어였고 우리는 팬 없이 리사를 냉각시켰습니다. 그의 바람은 이뤄졌지만 그때는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 그는 나가버린 상태였고 우리는 결국 일을 끝냈습니다. 이것이 내가 스티브 잡스를 울게 만든 사연입니다. 어쨌든, 그는 매우 화가 났었죠.

 

------------------------------------------

자세한 기사는 2011년 12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review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

Q & A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

shipping, exchange, return guide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상품은 입금 확인후 배송해 드립니다. 다만, 상품종류에 따라서 상품의 배송이 다소 지연될 수 있습니다.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상품을 공급 받으신 날로부터 7일이내

  단, 포장을 개봉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가치가 상실된 경우에는 교환/반품이 불가능합니다.
- 공급받으신 상품 및 용역의 내용이 표시.광고 내용과
 다르거나 다르게 이행된 경우에는 공급받은 날로부터 3월이내, 그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0일이내

교환 및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 고객님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 상품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는 제외
- 포장을 개봉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가치가 상실된 경우
- 고객님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재판매가 곤란할 정도로 상품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복제가 가능한 상품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자세한 내용은 고객만족센터 1:1 E-MAIL상담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고객님의 마음이 바뀌어 교환, 반품을 하실 경우 상품반송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