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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글. 오창섭,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영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삼성-애플 재판의 배심원 평결 내용이 발표되었다. 배심원들은 애플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내 매체들은 해당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매체에 등장한 글들은 대부분 국수주의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건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이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거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판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그러한 매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술자리에서 내가 만난 이들도 대부분 삼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삼성이 피해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삼성은 참 행복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고 자신의 입장에서 아파해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정말 피해자인가? 이번 소송에서 통신기술관련 원천기술특허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삼성에게 아쉬운 지점일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 관련 문제에 있어서 삼성이 피해자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디자인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분명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소송에서 문제된 제품들보다 그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에 더 눈이 간다. 제품의 배치와 그림자 처리, 레이아웃 등이 애플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방에의 의지가 없고서는 나올 수 없는 디자인이다. 만일 배심원들이 그 이미지를 증거로 보았다면, 삼성 제품이 애플 아이폰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삼성의 디자인 모두를 해외 언론이 떠드는 것처럼 ‘카피캣(모방꾼)’이라는 수사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사건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지,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성 디자인실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 중에는 창조적 열정으로 고유한 디자인을 생산하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와 그러한 움직임을 격려하는 관리자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삼성이 삼성으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방이라는 쉬운길로 가려는 디자이너들과 그것을 묵인하고 독려하는 관리자들도 없지 않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었다.

오늘날 삼성은 분명 예전의 삼성이 아니다. 1990년대 초였을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삼성의 디자이너 몇 명과 함께 일본 동경을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국적인 동경시내의 풍경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전자제품 매장들로 가득했던 아키하바라 거리를 동그란 눈을 하고 거닐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만 해도 전설이었던 소니, 파나소닉과 같은 회사들의 다양한 제품들을 품고 있는 매장 진열장은 화려했다. 매장들 앞에는 그 매장에서 팔고 있는 제품들의 이미지와 사양이 자세하게 기록된 책자들이 놓여 있었다. 함께 갔던 디자이너들은 그 책자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왜 그들이 그 책자를 챙겼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20여 년 전 삼성이 부러워했던 기업들은 이제 삼성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삼성과 우리에게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창조적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방에 보다 엄격해지지 않고서는 그 산을 넘을 수 없다. 만일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하고자 한다면 트레이드 드레스와 같은 제도를 통해 상표와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현지 상황에 맞게 몸을 틀어야 한다. 그것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의 제도와 법 역시 그러한 흐름에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디자인의 모방 여부를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은 애매하고 느슨하다. 한국 법원과 미국 법원이 다른 판결 내용을 보인 것은 디자인 모방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이 느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변하려면 모방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표절이나 모방에 관대하다. 최근 해당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표절했다고 결론이 났지만 여전히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표절 논란이 선거 과정에 있었음에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표절이라고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표절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모방이나 표절에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디자인계에도 로티사건을 비롯하여 디자인 모방이 문제되어 소송으로까지 간 전례는 많다. 하지만 소송을 한 디자이너나 기업의 디자인이 보호받은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모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판단 기준이 느슨했기 때문에, 그리고 모방과 표절 문제에 우리 사회가 둔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모방에 대한 무감각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모방을 미화하는 움직임일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그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번 삼성-애플 간의 소송을 다루는 매체들의 기사에도 이 표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물론 더한 표현들도 유명인들의 명성에 기대어 등장하였다. 하지만 만일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면 창조는 분명 입양아일 것이다.

 

 

 

오창섭 오창섭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내 곁의 키치(『디자인과 키치』 개정판)』,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제로에서 시작하라』 등이 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디자인연구실 (Meta Design Lab.)’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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