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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롭거나, 사사롭지 않은 디자인사

 

권준호 그래픽디자이너인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09년부터 영국의 왕립예술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예술 혹은 디자인이라는 활동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그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이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www.joonhosays.com,

jhkwon.egloos.com

joonhosays@gmail.com

 

# 남겨진 것 - 샤프펜슬

나는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유독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던 아이였다. 젊은 여선생이 ‘너 같은 자식을 나을까봐 결혼을 못한다’며 혐오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 모습은 여전히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구구단도 외우지 못할 만큼 암기력이 떨어졌고, 암기 위주였던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열등생이었다. 따돌림의 원인 중엔 내성적이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환경적인 이유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작은 무역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다시 서울 근교로 이사를 다녔고 몇 번의 이사 끝에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던 나는, 그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당시에 유행하던 학용품(초등학생에겐 굉장히 고가였던 황금색으로 도금이 된 마이크로사의 M.I.T 5000 따위의 샤프펜슬)들을 자주 훔쳐서 자랑하곤 했다.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온 날이면 아이들은 내 곁으로 모여들었고, 나는 그런 얼마간의 관심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초등학생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의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부모님 지갑에 자주 손을 댔었고 당시 그런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 나름의 노력들이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 아이들 모두가 초대받았던 한 인기 여학생의 생일잔치에 난 초대받지 못했고,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 찾아갔지만, 그 생일잔치에서 나는 마치 투명인간 같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됐고 나는 차츰 어린 그 시절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몇 번의 연애를 통해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둡지 않은, 평범한 학생의 모습으로 이십대를 보내고 있었다. 기억이란 내 의지대로 조작이 가능한 듯 보였다. 그러다 내가 어릴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군대에 입대하고 1년쯤 지나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고문관으로 불리던 최이병이었다. 그는 항상 조용했고 의기소침했으며 운동에 소질이 없었다. 그는 군대라는 조직이 그에게 요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버거워하는 듯 보였고, 선임병들은 지리한 구타와 욕설 끝에 (그가 일병 계급장을 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를 포기했다. 문제사병이라는 딱지와 함께 그는 그 조직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오월의 어느 날 부모님께 편지를 쓰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가득했던 그의 눈에서 나는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과거 나를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여선생의 눈빛과,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던 최이병의 눈빛 사이의 거리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의 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린시절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문방구에서 샤프를 훔치던 안쓰러운 아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반짝거리는 샤프를 내밀고 있었고, 나는 내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이의 아픔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남겨주고 싶은 것 - 대화

십대와 이십대를 지나오면서 어떤 사회에서든 그 집단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외감과 외로움이, 어떤 이들에겐 평생을 지고 가야할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렇게 다른 시각을 가지고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영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단순히 언어 때문만은 아닌 이 사회와 이방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무겁고 단단해 보이기만 했다. 이 사회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이곳에서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방인으로서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하고 싶었다. 나는 한 사회와 개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상징하는 투명한 아크릴판과, 주변의 색과 그래서 가장 대비되는 색깔의 물감을 그들에게 주고, 자신이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그들의 언어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영상과 사진으로 담았다. 그들은 외로움과 낯섦에 대해서 말했고, 자신들이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돈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가 그들과 나눈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구성원들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사진들은 단순한 사진의 기능을 넘어 그들 사이의 벽을 넘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낯섦과 동시에 설레임을 느끼는 듯 했다. 그들과 내가 길에서 혹은 그들의 삶의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이 사회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느꼈던 소외감과 열등감이 아닌 서로에 대한 호기심에 기반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이 작업을 보는 누군가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그들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낯선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기를 바랐다.

 

# 변하지 않을 것 - 커뮤니케이션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 그곳의 겨울은 춥고 힘들었다. 어느 날 한 인권단체와의 약속 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역한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냄새는 옆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서 풍겨왔고 나는 책을 읽는 척 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를 쳐다보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오랜만의 지하철에서의 독서를 방해하는 그 냄새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가진 한줌의 자의식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생각하며 부끄러워졌다. 어린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만큼 청결하지 못했고, 세살 많은 형의 큰 옷을 어색하게 입고 다녔다. 그런 외적인 것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편견을 만들어줬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나보다 더 초라한 옷을 걸친 친구들에게 일종의 우월감 따위를 느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우월감이 바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 소외당해야만 했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고 그 가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 하나의 기준으로 어떤 가치를 평가하려 할 때, 다른 기준을 가진 개인 혹은 집단의 가치는 존중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나는 나에게 - 운동과 암기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시당했던 -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하나의 기준에 의해 일렬로 줄 세워진 집단에서 다른 가치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느 일본인 친구에게 런던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나는 더 말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란 결국, 이쪽과 저쪽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 사회 혹은 스스로가 만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을 통해 얻은, 그리고 앞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나가야 할 가치일 것이다.

 

*본 글은 <지콜론> 2011년 4월호 ‘사사로운 디자인사’에 게재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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