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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그리고 디자인

Wit and Design

 

 

작업물에 숨통 트이기, 강문식과의 인터뷰

 

  

Interview 강문식

 

처음 디자이너 강문식을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는 2010년 즈음이었다. 그는 <운동장 매거진>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잡지를 디자인, 제작하고 있는데, 2010년에 발간한 <운동장 매거진> 2호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주제는 ‘몽타주’였고, 기고자 14명에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붙잡고 싶은, 복수를 꿈꾸는 한 인물에 대한 몽타주와 그에 대한 기억을 받아 수록했다.

 

 

문제는, (기고자의 진술이 허구가 아니라고 가정하면) 일생 가장 혐오하는 인물에 대한 서사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심각하고 때로는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참혹한 기억들이 전혀 심각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슬몃슬몃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앞면의 몽타주와 뒷면의 서술을 번갈아 보기도 했는데, 이런 ‘재미’는 순전히 강문식이 수배 전단의 형태를 차용했기 때문이지, 그 외의 다른 장치들로 이들을 가볍게 보여 주려고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결국 이 <운동장 매거진>은 나에게 그에 대한 인상을 하나 확립하게 했는데, 그에게는 어떤 소재를 다루든 그것을 예상에서 빗나가게 하거나 비틀거나, 우습게 망가뜨릴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또한 그렇게 소재를 ‘끌어내리는’ 시도가 전혀 경박하거나, 작위적이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인상과 추측을 확인해 보고자 인터뷰를 시도했고,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런 모습에 웃은 것은 내 쪽이었고, 이 인터뷰는 시치미를 뚝 떼고 밀어붙이는 위트에 대한 것이다.

 

 

 

글_ 이로  

 

 

 

아무래도 클라이언트 작업이 개인 작업보다는고통스러운편인가? 그 클라이언트가 기업이든 지인이든 다른 누구든

 

클라이언트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콘텐츠의 문제라고 본다. 개인이나 친구가 맡긴 일이라 해서 모두가 즐거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친구의 작업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기업의 일을 하더라도, 오히려 전혀 생각지 못한 분야의 일이어서 예상치 못한 것을 제시받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풀어 가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더 재밌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인 작업과는 어떻게 다를까. 클라이언트 작업이과 대화하는 것이라면 개인작업은와 대화하는 것일 텐데

 

 

, 클라이언트 작업이 물론 나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누군가 디자이너인 나에게 작업을 의뢰했다면 그 순간부터 작업의 시각적인 부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 작업도 마찬가지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물론 일을 맡긴 주체와 대화하고 그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좀 더 작업에 대한 주도적인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의 연장 선상에서 마사키 코모토의 작업을 설명해 준다면

 

 

그는 일본에서 메탈크래프트를 전공한 친구인데, 그가 만든 안경들을 이번에 일본에서 전시하게 되어 그에 대한 홍보물로 엽서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작업의 경우에는 안경 작업 자체와 전달받은 스케치들이 이미 워낙 훌륭한 재료였기 때문에, 가장 즐겁게 작업했던 경우로 꼽을 수 있다.

 

 

    

마사키 코모토 브랜드 홍보 엽서

안경의 형태에 따라 뒷면 로고의 형태도 바뀐다.

 

 

 

마사키 코모토의 작업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디자이너 스스로 즐기면서 작업한 듯한, ‘유연함의 기운인데, 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보다 내가 그 친구의 작업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앞으로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함께 작업을 하려면) 내가 이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더 그럴 수 있도록 실력을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서로 좋은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 아닐까 한다.

 

앞의 질문들은 사실 이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한 주체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디자인으로 표현하기 위해, 전문가를 섭외하여 일을 맡길 때, 위에서 말한유연함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나. 왜냐면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일을 맡기는 쪽에서는 유연함이란 곧 위험함(리스크)으로 느껴질 수 있고, 처음 의뢰했던 일의 목적에서 벗어난 부분은 최대한 쳐낸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임할 수도 있다. 이런 요소들이 네덜란드에서는 다르게 체감되는가? 유독 한국만의 상황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데

 

 

맞다. 여기에서도 언제나 의도와 예산과 디자인적인 문제로 늘 갈등하고 충돌한다. 중심에 사람이 있는 이상 모두가 동일한 만족을 한다는 것이 이미 불가능하고, 작업의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다. 결국 유연함이라는 것은 일을 맡기는 사람의아량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아량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얼마 전 한 디자이너가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레이크(Stedelijk) 현대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 우표를 제안했고, 실제로 우정국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여 우표를 제작했다. 디자이너 개인의 발상을 국가 기관이 받아들여 실제 결과물까지 진행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Experimental Jetset이 디자인한 립 근대 미술관 재개관 기념 우표.

홈페이지(www.experimentaljetset.nl/archive/stedelijk-museum-stamps)작업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작업물이나 블로그에서 보이는 전반적인 뉘앙스가 재치, 위트, 유머라고 파악되는데, 이런 인식이 좀 불편한가?

 

 

그렇진 않다. 사람 자체가 산만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을 진지하게 하면서 몸을 흔들고 있다든가, 집중 정도가 계속 바뀐다든가, 혹은 굳이 디자인에 다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요소들을 집어넣고 혼자서 즐거워한다든가 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먹색 값을 K85로 하면 될 것을 내 생년(1986년생) 에 맞춰 K86으로 지정한다든가, 판형을 175mm로 하면 될 걸 내 신장에 맞춰 176mm로 한다든가. 그렇다고 이런 암호들을 통해서 디자이너가 소비자보다 우위에 서서 권위적으로 굴려는 태도까지 발전되는 성격도 아닌 것 같다.

 

 

책자 작업인 『How to Make Your Life Hard in One Day』에 대해서 말해 보자

 

 

그것이야 말로 위트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 프로젝트는 하나의매뉴얼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어진 제한은 그것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행동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 매뉴얼대로 하루를 살았을 때 행복해지도록 유도하는, 일상적 행동의 재해석을 노렸다. 본래는 아주 작은, 전자 기기를 사면 딸려 있는 진짜 매뉴얼처럼 일러스트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사진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일러스트나 CG처럼 이미 보는 사람이 가상의 작업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볼 때와, 실사 내지는 사진처럼 꽤 많은 부분이 현실적인 작업이라고 느껴질 때 충격의 여파가 훨씬 더 크지 않나

 

 

맞다. 그런 식의 충돌을 의도한 부분이 많다. 핸드북이라고 부르면서 사이즈는 A2. 하루의 행동을 위한 매뉴얼이기 때문에 온종일 들고 다녀야 하는데 A2라서 실제로 휴대가 어렵다. 제목에 있는Hard를 판형으로도 구현하려고 한 것이다.

 

 

 

 

 

How to Make Your Life Hard in One Day

디자이너 본인이 직접 촬영 및 출연

 

 

 

 

 

결국 내용 자체가 유머러스한 것이 아니라면, 디자인에 있어서 위트, 유머, 재치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느낀다. 디자인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달려갈 때 위트는 그것에 숨 쉴 틈을 제공하거나, 구석진 곳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인데, 디자인에 그런 위트가 필요하다고 보는 편인가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디자인에 있어 문제 해결이 잘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지 불필요한 유머까지 집어넣을 이유는 없다.

 

 

어쩌면유머를 꼭 발생시켜야 한다!’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태도니까

 

 

작업을 할 때 유머나 위트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든 최대한 진지하게 접근했고 오히려 독자/소비자 쪽에서는 디자이너가 최대한 진지하게 제작한 것임에도 실제로 그들은 반대로 느낀다는 점에서 이중의 웃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경직되거나 너무 차가운 작업보다 여유나 숨이 들어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실제 다급하지 않게 사는 삶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작업에 투영된다는 생각도 한다.

 

 

 

 

 

 

쓸쓸쓸 포스터

쓸쓸한 서체가 여러 번 중첩되어 하단의 'ㄹ'이 제목 <쓸쓸쓸>의 3회 반복을 알려주는 힌트다.

 

 

 

 

 

Rietveld v Praze

매장 홍보용 전단처럼 만든 작업 발표 포스터

 

 

 

 

강문식의 작업들은 직선적이거나 직설적이지 않다. 숨기거나 돌아가고, 일반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그렇지 않게 부정하거나 중요하다고 여기던 사실을 축소시킨다. 디자이너는 최대한 많은 고민과 해석을 통해 자신의 숨통을 모아 역으로 작업물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멋대로 지어낸얌우팔라라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록페스티벌을 홍보할 때얌우팔라 록페스티벌이란 카피를 가장 큼직하고 굵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미지에 지친 우리들에게 무의미한 충격일 수 있다. 디자이너 강문식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이해와 고민을 바탕으로 여분, 암호, 유머, 복선을 작업물 곳곳에 숨겨 놓는다.

 

 

**글의 전문은 <위트 그리고 디자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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