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스웨덴

: 완벽하지 않지만 적당히 행복한 스웨덴 생활기

 

 

. 이성원, 조수영

정리. 이가람

 

 

View스웨덴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방식

 

 

 

 

피카(Fika), 하루의 짧은 쉼표가 주는 일상의 여유

스웨덴은 커피와 인연이 깊다. 1년 중 밤이 길고 추운 날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커피를 많이 마신다

(이웃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사람들도 날씨 때문에 커피를 자주 즐긴다). 한국에선 커피를 그리 즐기진 않았지만

스웨덴에서 지내다 보니 저절로 커피를 찾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자주 마신 커피는 필터 커피였다.

한국에서는 카페에 갈 때마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고소하거나 살짝 산미가 있었는데 스웨덴 커피는 훨씬 더

강렬한 맛이었다. ‘필터 커피=조금은 밍밍한 커피로 느끼고 있었던 게 무색해졌다. 스웨덴 필터 커피는

일단 색깔부터 굉장히 진하다. 조금 연하게 먹고 싶어서 커피에 물을 아무리 더 넣어도 강하고 쓴맛이 났다.

커피를 2잔 마신 날에는 카페인 때문인지 밤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스웨덴에는 스타벅스가 거의 없고(2017년 기준 16개 매장)

현지 커피숍이 대부분이다. 우리 부부 또한 스웨덴 현지 카페들을 좋아하고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했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커피 마시는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생각한다.

일명 피카(Fika)’라고 해서 티타임을 부르는 스웨덴 말이 따로 있고 누구든, 어디서든 일과 중에 한 번쯤은

친구나 동료, 가족들과 피카를 했다. 피카라는 스웨덴 말은 카페를 거꾸로 발음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새로운 단어를 이렇게 간결하게 만드는 방식은 스웨덴 사람들의 성향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피카를 할 때, 반드시 커피나 차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며

잠시 쉬는 것이 피카였다. 피카를 너무나 사랑하는 스웨덴 사람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스웨덴에서 지내면서

커피를 많이 마시고 피카를 즐겼다.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아직은 살짝 서먹한 사이일 때, “피카 할래요?”

말을 거는 건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만큼 스스럼없이 편하게 건넬 수 있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고 싶지만 식사까진 부담스러울 때도 우리 집에 와서 피카하자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이웃의 스웨덴 노부부도 그들이 피카하자고 초대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 우리도 친구들이랑 더 얘기하고 싶거나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카페에서, 집에서 피카를 했다.

 

집이나 회사, 카페에서 친구, 연인, 가족, 동료와 함께 커피와 달달한 과자, 케이크 등을 먹으며 짧은 휴식을 가지는 시간.

피카가 스웨덴에서 이렇게 널리, 자주 쓰이는 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하는 것처럼 피카 시간을 일과에

꼭 집어넣기 때문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스웨덴 사람들에게 피카란 일상에서 꼭 지켜져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랄까? 볕이 잘 드는 창가 옆, 탁자에 둘러앉아 피카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바쁜 회사 일과 학교 일과 중에 잠시 모여서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나누는 이 시간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자신을 조여왔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렇게 스웨덴 사람들은 특별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주변 사람들과 같이할 수 있는 걸 즐기면서 행복과 여유를 만들어 가는 듯 보였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티타임을 피카라는 그들만의 이름으로 지켜나가는 이유가,

그들의 이런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

스웨덴 날씨는 극과 극이었다. 여름에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여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상쾌한 공기와 밤 9시가 넘어도 적당히 밝은 바깥 풍경까지 즐기고 있자면

지상 최고의 낙원이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7~8, 짧은 여름이 지나가면 스웨덴 날씨는 돌변했다.

날씨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해서 가을이 시작되는 10월부터 4월 말까지는 우중충한 풍경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살던 룬드는 스웨덴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눈과 얼음, 추운 날씨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근처에 있는 바다의 영향 때문에 겨울에도 비교적 포근했다. 오히려 한국의 겨울이 추워지고 있다는 소식에

스웨덴과 한국이 서로 바뀐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기온만 한국보다 높았지 매일 같이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낀다는 것이었다. 종일 어두컴컴한 하늘 때문에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답답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해를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구름 때문에 해 구경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고위도 지역이라 낮의 길이도 짧았다. 12월의 룬드는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창밖이 희끄무레하게 조금 밝아왔고

3시쯤 되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낮에는 해가 비치지 않고 밤은 정말 긴 날들, 이런 날씨가 길게는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민자나 외국인 유학생들은 이런 날씨가 익숙하지 않아서 스웨덴 사람들에 비해

더 무기력증을 호소하거나 우울함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여태껏 살면서 날씨에는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웨덴의 겨울을 경험하며 맑은 날씨와 따뜻한 태양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다.

 

이런 악명 높은 겨울 날씨 때문인지 외국 사람이든 스웨덴 사람이든 할 것 없이 서로 모이기만 하면

오늘의 날씨가 대화 주제가 되곤 했다. ‘오늘도 비 맞고 자전거 탔어라거나 오늘 바람이 엄청 부는데?’,

세상에 오늘 해가 떴어! 얼마만이야?’처럼 말이다. 한번은 스웨덴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여러분이 스웨덴에 살면서

가장 안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었는데 외국인 친구들은 주저 없이 날씨를 첫 번째로 꼽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던 곳의 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태양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자기 나라 자랑을 늘어놓았다. 스웨덴 날씨에 대한 불평에 선생님은 그래도 스웨덴 여름 날씨가 환상적이라며

반박할 법도 했지만 차분히 듣고 나서 스웨덴 날씨가 그렇죠 뭐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스웨덴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내며 점점 커지는 귀찮음을 이겨내야 했다. 어딜 나가려고 해도 비가 와서

심란하고 외출하려고 준비를 하다가도 금세 컴컴해지는 밖을 바라보고 에이, 너무 늦었네. 그냥 집에 있자고 한 게

수십 번이었다. 우리 부부는 점점 집돌이, 집순이가 되어갔다. 처음 스웨덴에 왔던 해 여름엔 매일 수영장에 가고

조깅도 하며 시내에 뭐가 있는지, 쇼핑몰에는 어떤 물건들이 새로 들어왔는지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겨울이 되자

운동도 쇼핑도 시내 구경도 시들해졌다. 날씨가 정말 결정적이었다. 나는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도 날씨가 안 좋으면

우리처럼 집에 머물며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날씨에 익숙해서인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비가 매일 와도 불평하지 않고

우비와 장화를 갖춰 입고 바깥을 잘만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스웨덴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비를 맞으면서 조깅을 하고 있는 동네 사람을 봤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그를 보며 비를 맞으면서도 운동을 하는 열정에 적잖이 놀랐다.

또 해가 짧아서 한밤중처럼 느껴지는 오후 5, 우리는 깊은 밤이 되었다고 착각하면서 외출을 포기하곤 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해가 떠 있든 밤이 어두워졌든 크게 개의치 않고 취미 활동을 했다.

퇴근하고 수영장에 가거나 댄스 교실에서 춤을 추며 활기차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들의 모습.

땀을 흘리면서 날씨가 주는 스트레스를 날리는지 날씨 따윈 예전부터 무감각해져서 상관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활동적인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학교나 유치원에서도 겨울이라고 해서

실내 수업만 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키복 같은 방한복을 챙겨 입고 야외 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정말 적극적이구나 싶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궂은 날씨를 불평하기보다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갑작스러운 비에도 발을 동동거리지 않고 쿨하게 맞는다거나 해가 빨리 져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궂은 날씨를 좋다고 애써 거짓으로 긍정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또 이런 환경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궂은 날씨에 압도당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우울해질지 모른다. 그들의 이런 적극성은 열악한 기후조건을 가진 땅 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며 체득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의 철학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 휘게(Hygge), 오캄(Au Calme) 등 삶에 관한 마음가짐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두는 모습들은 그동안 많이 보고 들어왔다. 스웨덴에도 라곰(Lagom)이라는

스웨덴만의 삶의 태도가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표현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 을 외국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스웨덴 친구들은 라곰이라는 말을 종종 쓰곤 했다.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으면

라곰인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고 너 컨디션 어때?”라고 물을 때도 라곰, 시험을 보고 나서 시험 문제 어땠어?” 물어봐도

라곰이라고 대답할 때가 있었다. 라곰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을 때,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적당한 마음이나 상황을 표현하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스웨덴 표현 중에 ‘Lagom är bäst’라는 말이 있다.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라곰은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일 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밥 먹고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를 몇 조각이나 먹을 건지, 술자리에서 맥주는 얼마나 마실지,

이번 달 쇼핑으로 살 옷의 가짓수를 생각할 때 등 라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음식은 배불리 먹으면 좋고 쇼핑은 여유가 있으면 많이 할 수 있는 거 아냐? 싶기도 했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언제나 적당히 자제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은 스웨덴 사람들이랑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식탁에는 우리가 즐길 만한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며 과한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식사를 마쳤다.

너무 배부르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에서 식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런 식사 문화도 라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곰 문화는 회사에서도 볼 수 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그 중 하나다. 정해진 근무 시간이 지나면

바로 퇴근하고 웬만해서는 초과 근무를 요구하지 않는 게 너무나 당연한 스웨덴의 회사 문화다.

이것은 라곰이 스웨덴 사람들의 인식뿐 아니라 사회 제도에도 녹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제도와 문화 덕분에 스웨덴 사람들이 자신만의 삶과 일을 두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라곰의 의미를 알아갈수록 학창 시절에 배웠던 중용의 가치가

라곰과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두 가치 모두 인생 곳곳에서 과잉이나 부족이라는

극단을 피하고 적당한 균형점을 찾으며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예전엔 많다, 최고, 크다, 가장같은 말들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Lagom är bäst’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스웨덴 사람들을 알아가며 내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 위 글은 책 헤이 스웨덴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을 비롯한 더 많은 에피소드는 헤이 스웨덴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이성원

초등학교 교사. 반복되는 일상을 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스웨덴에서 생활하며 발견한 좋은 생각과 가치를 개인의 삶과 교사로서의 업에 적용하려 한다.

아내 조수영과 함께 블로그 바깥부인과 쉐덴댁’,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지속 가능 스튜디오’,

글 짓는 스웨덴 부부를 운영하며 경험과 생각을 다양한 이들과 나누고 있다.

 

조수영

방송국 예능 PD로 일하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다.

스웨덴 룬드대학교에서 환경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살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을 관찰하며 직업과 월급,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속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지식,

스웨덴 생활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지속 가능 스튜디오에 풀어내고 있다.

 

지속 가능 스튜디오 brunch.co.kr/@sustain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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