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저승사자

집에만 오면 죽는 식물, 어떡하면 좋을까

 

 

정수진

그림. 박정은

정리. 김아영

 


부채 선인장, 성탄절 전야의 사망 선고




크리스마스 전전날인 12월 23일은 오래간만에 손님이 많아 꽤 분주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한 손님이 급하게 들어왔다. 장갑을 낀 손으로 수평을 맞추어 들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샀던 건데 상태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덮개를 열어젖히니 안에는 얼어서 고꾸라진 작은 부채선인장 화분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얼엇다 녹은 듯한 두 선인장은 색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얼었다 녹은 듯한 두 선인장은 색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난 그 색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살릴 수 있는 건가요? 아직 죽지는 않았죠?"라는 물음에, 내 것이었다면 주저 없이 확정 짓고 말았을

생각들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 식물들이 얼었던 것 같은데 혹시 최근에 바람에 두신 적이 있나요?"

"아뇨, 창가 안쪽에 뒀었어요. 

밤에 찬 바람이 좀 들긴 하는데요. 그것 때문일까요?"


화분 아래에 작게 적어놓은 날짜에만 자꾸 눈이 간다. 몇 개월 동안 키운 걸까. 혼자 머리속으로 계산해보며 

어떻게 말씀드려야 충격을 덜 받을까 고민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정말 안타깝지만 제가 볼 때 식물을 살리긴 많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미 죽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날을 돌이켜 봤을 때 기억에 뚜렷한 건, 다시 상자를 덮어 수평을 맞춰 두 손에 안던
 
허망한 표정과 침묵 속에서 힘없이 돌아서는 뒷모습이다. 그 뒷모습에 대고 차마
 
안녕히 가시라는 말도 낭지 않았다. 

 
사진을 보내서 상태를 물어도 될 텐데,
 
식물을 직접 가지고 와서 답을 얻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이런 정황을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선고를 들으러 오셨을 테죠. 
 
누군가가 내려주는 그 선고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요."
 

 





가게 안의 다양한 식물들과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이 저마 무게가 덜해지는 것을 느낀다. 식물이 죽더라도 말 그대로 '유감스럽다', '안됐다' 정도의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감정들이 스쳐 간다.


그러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식물이 어느 날 극적으로 사망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기르는 식물의 사망 선고를 들은 손님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손님들의 텅 빈 표정과 축 처진 어깨도 

기억 속에 하나하나 새겨져 간다. 그분들께 무어라 말씀드리면 더 좋았을까 하며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결국은 일어난 상황을 알려드리는 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역할인 것 같다. 그런 선고가 필요한 분들도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위로와 응원의 말씀읃 드리고 싶다.




 

 

- 위 글은 책 『식물 저승사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을 비롯한 더 많은 에피소드는 식물 저승사자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정수진

서울 염리동에서 식물가게 '공간 식물성'을 운영 중. 식물, 식물 기르기, 식물 판매, 식물 구경,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공저  우리가 원하는 식물이 있다.


박정은

식물과 동물 관찰을 좋아한다. 햇빛, 바람이 충분한 곳에서 식물을 키우며 느긋하게 사는 삶을 꿈꾼다. 


 
Copyright ⓒ 2010 지콜론 All rights reserved.
전화 031-955-4955   팩스 FAX : 031-955-4959   법인명 지콜론
주소 413120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42 3층    사업자 등록번호 [141-04-10919]
통신판매업 신고 제 2010-경기파주-2610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이승희(seunghee8215@gmail.com)   대표자 이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