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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이차령

<지큐 코리아>, <나일론>, <엘르 걸> 등 패션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 포토그래퍼로 일하는 이차령. ‘무심한 듯 시크한 디자이너와의 감각적 인터뷰’를 기대했던 만남은, 예상 외로 흘러갔다.

에디터 이상현

움츠린 어깨, 옆모습, 그리고 해 지는 오후…. 창에 붙은 이차령의 사진과 그림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뭔가 꿈을 꾸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노란색을 모두 걸러낸 듯 푸르스름한 사진과 곧 지워질 듯 옅게 연필로 그린 그림은, ‘감각적’이라는 표현이 썩 어울린다. 이차령은 <지큐 코리아>를 통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윤계상 등의 인물을 촬영하며 개성 있는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는 <나일론>, <엘르 걸> 등에서 ‘예쁘지만 예쁘지만은 않은’ 그림의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작업을 의뢰한 에디터가 붙여주는 이름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포토그래퍼로 소개될 때가 가장 편하죠.” 다양한 장르에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을 두고 매체는 손쉽게 ‘멀티플레이어’나 ‘전방위아티스트’ 같은 얄팍한 수식을 달지만, 그녀는 차라리 지금 하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것 같다.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할 수 있고, 또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조금씩 해나가는 정도”라고 말한다. “누가 들으면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직은 그게 사실이죠.” 그저 겸손을 떠는 말만은 아닌 것도 같은 게, 이차령이 쓰는 카메라는 ‘아직도’ 2001년에 구입했다는 캐논 EOS5이고, 그 흔한 개인 홈페이지조차 없으니까.

 

 

 

지난 1월에 타진한 <지콜론>과의 인터뷰를 그녀가 고사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정식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일로 연명을 하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지 고민했던 시기여서 인터뷰에 응할 수 없었어요.” 누군가는 흠모할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패션 매거진의 러브콜이 끝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섬세하지만 파워풀하고 예쁘지만 어둡기도 한 양성적인 면이 패션지의 성향과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림과 사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패션이 추종하는 찰나의 미학과 상통해서는 아닐까. “사진을 통해 심오한 주제를 전하려는 마음이 없어요. 그림도 형태의 힘만 중요해요. 이를테면 뭔가를 담고 있는 무표정을 발견했을 때, 그 인상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게 목적인 거죠. 사진이나 그림이나 애초에 이야기를 담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어요.” 이차령이 최근 새롭게 몰두하는 ‘작곡’에도 지지고 볶는 사랑 얘기 따위는 없다. “음악 역시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한 비트만으로 놀 수 있는, 그때 들리는 감각만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여전히 순간을 믿는 서른 살 이차령에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물었다.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모순이 담겨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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