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New Kids on the block

시작이 좋다

허창봉

타이포그래퍼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허창봉의 디자인은 뭔가 남다르다. 한글의 조형미가 강조된 작품에선 ‘한글’이라는 틀에 갇혀 있던 다양한 매력들이 자유롭게 피어난다. 그는 마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글자 속에 조심스레 싹튼 꽃봉오리를 발견하고 이를 돌보고 가꾸어 꽃으로 피워나게 하는 조력자, 정원사 같다.

 1

디자이너 허창봉은 세련되지 않은 글자라는, 한글에 대한 불편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프로젝트 ‘한글, 아름다운 봉우리를 피우다’에서는 한글을 바라보는 그의 자유로운 관점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몇 가지 규칙에 따라 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독특한 패턴과 다양한 색의 조합으로 인해 ‘한글’이 이국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예를 들어, ‘ㄱ’, ‘ㄴ’, ‘ㄷ’ 과 같은 자음들을 배열해 마치 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나타나는 눈꽃모양이나 톱니바퀴 모양처럼, 새롭다 못해 생경하기까지 한 패턴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치읓’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만들어낸 패턴은 어릴 적 만화경을 처음 들여다보던 때의 황홀경마저 맛보게 한다.

 2

허창봉의 다양한 한글 작업들은 결국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디자인을 전공하게 됐다는 그는 블랙 1도, 단도만으로도 굉장히 멋있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타이포그래피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자유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의 성정에 따라 한글 디자인 역시 이미지, 형상, 조형적 구조들이 자유롭게 분해되고 합체되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마음에 드는 서체가 없을 때는 직접 한글을 디자인했다. 그가 만든 서체 ‘quarter circle’을 통해 알 수 있듯 그는 개인적인 작업을 할 때, 한글의 가독성이나 판독성보다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드나 포맷의 간섭을 받지 않고 디자인 규범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작업을 즐기다 보니, 그의 작품은 종종 클라이언트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다른 이들 의 관점이나 비평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그이지만, 기존의 질서와 규칙들을 넘어선 디자인에 대해 무조건 ‘쓸모없다’는 무자비한 판정을 내리는 일부 편협한 ‘디자인관’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일단 디자이너가 정한 콘셉트가 좋다면 나머지 표현들에 있어선 제약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글을 디자인 할 때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서로의 관점이 다른 것을 인정해줘야 할 필요도 있죠.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작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어떠한 틀, 제약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연 허창봉은 대개 신진 디자이너들이 그러하듯, 현재 본인의 예술관과 ‘대중성’ 사이에서 지혜로운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디자이너로서 채 개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가 지향하는 ‘독창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을 찾기 위해 생산적인 고뇌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훗날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어쨌든 시작이 좋다.

www.heochangbong.com

3

 4

1-2 한글, 아름다운 봉오리를 피우다

3 quater circle

4 The Earth Saving Cale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