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교육의 영향권-오창섭

g: Special Feature

Interview

 

에디터. 이찬희

 

오창섭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디자인과 키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제로에서 시작하라』 등이 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디자인연구실(Meta Design Lab.)’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교육자로 있으신데요, 가르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석사 과정을 마치던 해인 1997년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첫 강의를 했었어요. 과목명이 ‘현대 디자인과 문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학생들 앞에 서는 일이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첫 강의로 교양 과목를 담당했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간 <디자인> 1996년 1월호 실린 오창섭의 첫 연재 글

 

지난 해 연구년을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년 전과 후 교육에 대한 생각이 변화된 것이있나요

작년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휴스턴대학교(University of Houston)에서 1년간 연구년을 보냈습니다. 낯선 곳에서 생활하면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나 디자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느꼈습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한 소통은 어쩌면 판매를 위해 사물이나 이미지를 새롭게 미화하는 소극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몸짓이자 행복한 삶의 기획으로 디자인을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디자인과 키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등 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여러권 내셨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상호작용을 하나요

짧지 않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지만 교육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작가라는 말도 그렇고요. 사실 그러한 이름들로 저를 가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저는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을 할뿐입니다. 공부와 연구를 진행하고, 그것을 토대로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와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의미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 모두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연구 없는 교육은 작업논리 없는 작품만큼이나 공허합니다. 소통 없는 생각도 신체 없는 정신과 같지요. 저는 공부, 연구, 글쓰기, 작업, 교육이 서로 다른 일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서로는 서로에 기대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셨고 현재도 산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현장의 디자이너가 아닌 교육계로 온 이유가 있었나요

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배우고 졸업할 때만 해도 실무에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감히 말이죠. 그런데 실질적인 산업디자인을 하는 쪽보다는 교육으로의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 기회들을 계속 밟아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지금에 와있네요. 지금은 실무 디자인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어요. 지금은 제가 공부하던 당시와는 디자인환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죠. 아이폰이 큰 분기점인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제품디자이너들은 휴대폰을 디자인하지 않아요. 매년 휴대폰, 내비게이션 등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런 제품들의 하드케이스를 디자인하는 것만을 두고 산업디자인이라고 말하지 않죠. 제품디자이너들이 하드케이스를 디자인하는 시장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앱, UX, UI를 디자인하는 IT 시장은 커졌죠. 또 세계의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으로 제조업이 많이 넘어가면서 우리나라에서의 제조환경은 과거와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단순하게 제품의 겉을 디자인한다는 차원에서 산업디자인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거죠.

 

산업디자인 환경의 변화는 교육에도 변화를 주었겠네요

그래서 지난 학기에는 스튜디오 코스를 진행했어요. 이런 환경변화에 대해 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고자 했죠. 저는 디자인을 할 때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문제점이 보이기 때문이죠.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제안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이런 얘기들을 진짜 행위를 통해서 즉, 스튜디오 코스를 통해서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일정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 메타디자인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부분들, 디자인을 대상에 놓고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었죠. 그런데 다음 학기에는 디자인리서치에 대한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학부에서는 아직까지 한번도 디자인론, 디자인사와 같은 디자인 이론에 대한 수업을 하지 않았었는데 다음 학기부터는 하려고 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아요.

 

『인공낙원을 거닐다』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스스로 변화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과정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껏 생각한 많은 사회적인 지식과 룰 같은 것들이 약간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디자인을 대상화해 보려고 하자, 더욱 분명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학기에 디자인리서치 수업을 하려는 이유도 우리가 이제까지 해왔던 디자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공간디자인, 디지털 디자인 등 매체로써 디자인을 구획해 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왜 그곳에 존재하고 그런 것들이 삶의 공간에서 어떤 의미로 유통되고 사용되고 거기서 사람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 보다는 디자인의 논리, 예를 들어 조형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또는 얼마나 잘 팔리게 할 수 있느냐와 같은 마케팅과 관련된 문제들에 천착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디자이너들의 능력이라는 게 그런 것들을 습득하는데 기울어지게 됐죠. 가끔 학생들에게 책을 얼마나 읽는지를 물어보면 한 학기에 1권 이상을 읽는 친구가 10퍼센트도 안됐던 걸로 알고 있어요.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로 읽는 책은 한 달에 한 권이 안 되요.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이 10퍼센트라고 하면, 나머지 90퍼센트는 졸업할 때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거죠. 심각하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지식과 지혜의 차원을 떠나 학생들이 세상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얼핏 보면 엄청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것들에서 비롯된 관심일뿐 한미 FTA(fta.go.kr)라든가 하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소를 40만 마리를 죽인다 라고 하지만 자신과 어떤 관계성도 찾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거지들이 있는데 그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화양동 길거리를 걷다 보면 광고전단지들은 어떻게 뿌려지고 아침이 되면 다시 깨끗해 지는데, 그런것들은 자기 삶이랑 관계가 없다, 혹은 자기가 하는 것과 별 관계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죠.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약간 공허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은 졸업해서 사회에 나오면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 것을 몰라준다고 생각하죠. 그 다음에는 사회와 커뮤니케이션 할 때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그것 역시 상대방 탓을 하죠. 그런데 상대편의 사람들은 디자이너들은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해요. 이유가 뭘까요?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든가, 디자인을 다른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능력들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들에 좀 취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디자인에서 재료, 조형원리 등과 같은 지식뿐만 아니라 좀 더 다른 맥락적인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그런 관심사들이 교육, 수업으로 연결되기도 하나요

최근에는 사회를 보고 거기서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상상하고 구체적인 해결의 지점까지 나가는 이 전체적인 프로세스에 관심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디자인 하는 능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사회를 관찰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사람들은 똑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각자 다른 것을 보거든요. 이때 관찰의 대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하거나 논지를 발견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경험, 지식, 관점 등이 있어야 해요. 교육에서 이러한 것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고요. 프로세스를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할 때 제품디자이너는 제품만 생각하고 그래픽디자이너는 그래픽만 생각하고 공간디자이너는 공간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해요.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하는 디자인 외적인 것, 솔루션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사회운동이 더 적절한 방법일 수도 있고, 공연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어요. 이런 방법들을 아우를 수 있으려면 디자인 외적인 지식도 필요한 거죠. 어떻게 보면 지식이라는 게 굉장히 허망한데, 그래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여겼고, 수업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인터뷰의 키워드, 교육-영향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의 경험이 아니라도 무관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사람)이 있었나요

학교에 입학한 뒤 어떤 교수님이 ‘디자인은 바늘에서 우주선까지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걸 하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선배들을 보니까 멋있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4학년을 다 마치고 난 뒤에 보니까 그런 건 없었어요. 갈증을 많이 느꼈던 그때(4학년) 김민수 교수님이 오셨고 그분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건 부정할 수 없어요. 김민수 교수님 역시 학교에 처음 오셨으니까 얼마나 의욕이 많으셨겠어요. 전 교수님들이 6시 이후 밤에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대기업과 대학원 사이에서 대학원을 선택했던 것도 그분 영향이 컸죠. 지적 호기심이 충만해 있을 때에 어떤 자극이 됐죠. 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신 ‘아 디자인을 다른 방식으로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라는 기점이 된 책은 있어요. 『디자인 디스코스 Design Discourse』라는 책이었어요. 잘 안 되는 영어지만 친구들과 챕터별로 나눠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 책을 접하면서 ‘디자인을 이런 방식으로도 이야기 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증폭되면서 버네큘러 디자인, 문화, 삶과 같은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본질적인 것의 영향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시골(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갖는 특성이 분명히 있어요.

시골에서의 인격적인 관계는 서로에 대해서 ‘간섭’을 하는 관계인데, 당시에는 그 삶과 그 관계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컸어요. 농사 짓는 부모님에 대한 불평, 다른 친구들은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재밌게 노는데 저만 부모님을 도와서 일을 했어야 했으니까, 농사 짓는 게 힘들어서 방학이 왜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일반적으로 자연과의 관계 그러면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였어요. 벗어나고 싶은 고통. 결국 그 삶에서 벗어나 도시에서의 삶을 살면서 부모와 시골의 관계에서는 벗어났지만 한편으론 외로웠죠. 시골은 굉장히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지만 자유롭지는 않았고요. 어린 시절 그런 상반적인 체험을 한 제 자신을 대상화시켜 바라보면, 그런 체험이 저를 인간과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그런 걸 알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고 그러면서 디자인 외적인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됐었죠.

그럴 때 묘한 경험을 했어요. 96년도,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김민수 교수님이 쓴 원고를 월간 <디자인>에 가져다 주는 심부름을 하게 됐어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 박인석 편집장님이 저도 원고를 쓸 수 있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글을 쓰게 됐었죠.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너도 할 수 있다, 한번 해보라고 해서 ‘‘굿 디자인’의 기준, 문제 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어요. 내 글이 활자가 되어 딱 나오니까 묘한 기분이 드는 거에요. 그런데 실은 그 이후의 경험이 중요해요. 나중에 박인석 편집장님을 만났는데 ‘너 때문에 광고 잘렸다’ 그러시는 거에요. 관련된 공공기관에서 기사를 보고 내보내던 광고를 중단했던 거죠. 그런데 박 편집장님은 기분 나쁘게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잘했다는 식으로 얘길 하셨죠. 이런 경험을 한 후 제가 느낀 건 산업디자인을 할 때 사람들에게 뭔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어요. 시각, 광고는 사람을 속이는 듯하게 느껴졌고, 어린 생각에 글이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거죠. 그게 굉장히 강한 경험이었어요.

 

오창섭 작품

미국 휴스턴대학교 연구년 기간 중 열었던 전시 / 2011

 

『디자인과 키치』

 

학생 작품

<종묘공원 프로젝트> / 2007

-----------------------------------------------------------------------------------------------------------------------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2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view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

Q & A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