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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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vetica

 

에디터. 유인경

이미지출처. 영화 <헬베티카>, 책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이야기』, HOMAGE TO A TYPEFACE』

 

ⓒ2002 by Lars Müller Publishers

 

Global Modernist

헬베티카가 사람이라면 군더더기라곤 없는 슬림한 블랙 수트에 뿔테안경을 쓰고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애나멜 구두를 신은,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남자일 것이다. 그는 깔끔하고 장식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을 땐 특별히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품의 남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어디에나 어울리는, 섞여들어 자신을 감출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예를 들자면, 슈퍼맨으로 변신하기 전 (특별히 깨끗한 수트를 입었을 때의, 다만 근육이 없는) 클라크 같은 인상이랄까.

헬베티카는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대표적 서체로 평가 받는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이 서체는 시대를 거듭하며 미국, 유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모던하고 명확하며 중립적이고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서체. 이것이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헬베티카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헬베티카라는 서체에 대한 의견이야 어떻든 그것이 오늘날 서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헬베티카라는 서체는 역사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 출생했고 그 소임을 다하여, (적어도 디자인계에 있어서) 사회와 역사를 변화시켰다. 하나의 서체가 그토록 많은 역할을 하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은 역시 서체 이상의 큰 의미를 품고 있음에 틀림없다.

찬찬히 되짚어보면 서체는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표현수단이다. 그리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때문에 서체는 중요하고 디자이너는 책임이 막중하다. 우리는 책에서 인쇄물에서 또는 길에서 지나치는 간판이나 각종 텍스트들에서 서체를 읽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다. 디자이너는 서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헬베티카 역시 마찬가지이다. 헬베티카가 계속해서 발전해가려면, 또한 그 서체 특유의 존재감으로 올바르게 사용되고 보는 이들에게 인식되려면, 먼저 헬베티카의 정체성, 역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모더니스트 헬베티카, 이 매력적인 서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 그 이상의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History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 바젤 근교의 뮌헨스타인에 위치한 하스(Haas) 활자 주조소에서 에두아르드 호프만(Edouard Hofmann)의 지시와 도움으로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에 의해 개발됐다. 당시 에두아르드 호프만은 막스 미딩거에게 산세리프 스타일의 현대적인 서체를 제작할 것을 제안했다. 미딩거는 19세기부터 스위스에서 사용되던 서체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를 모델로 해 업그레이드 버전인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 (Neue Haas Grotesk)’를 탄생시켰다. 이 서체가 후에 헬베티카가 된다. ‘Schelter-Grotesk’와 ‘Haas’ Normal Grotesk’를 기반으로 디자인 된 이 서체는, 명확하고 정교하며 그 형태 자체로서 개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사용 가능한, 다양한 쓰임이 가능한 중립적인 타입페이스였다.

1957년 발표된 이 서체는 1961년까지 원래 이름으로 불리다가 독일의 스템펠(Stempel) 주조소가 이 활자체의 판권과 디자인을 사들인 후 보다 국제적인 시장성을 가진 서체로의 이미지를 위해 ‘헬베티아’라는 이름으로 바꾸려 하였다. 이들이 제안한 명칭, 헬베티아는 스위스의 옛 라틴어 이름이다. 그러나 에두아르 호프만이 서체 이름으로 국가명을 넣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 스위스가 아닌 ‘스위스 디자인’의 의미를 담은 ‘헬베티카’로 명명하게 되었다. 오늘날 헬베티카는 스위스는 물론 미국과 유럽을 통틀어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잘 알려진 서체 중 하나로 손꼽히며 서체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존재하고 있다.

 

 

ⓒfilm by Gary Hustwit

 

 

 

 

ⓒfilm by Gary Hustwit

 

 

 

 

ⓒ2002 by Lars Müller Publishers

1. 우베 뢰쉬(Uwe Loesch), 독일, 1990

2. 앨런 플레쳐(Alan Fletcher), 영국, 1991

3. 미카엘 바비에라(Michael Baviera), 스위스, 1968

4.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 영국, 2002

 

 

 

 

한스 노이브르그(Hans Neuburg), 넬리 루딘(Nelly Rudin), 스위스, 1960

 

 

 

4.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 미국, 1966~70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이야기』 중

 

 

 

Interview

김현미

그래픽디자이너, SADI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교수

 

스위스에서 탄생한 헬베티카라는 서체는 어떻게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주요 서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울러 오늘날까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대표 서체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매력?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920, 30년경 유럽에 모더니즘이 도래했을 때 모던 디자이너들이 선호했던 서체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라고 하는 산세리프 서체였습니다. 글자에 부가된 장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세리프가 없고 획의 굵기가 일정하여 알파벳의 기본꼴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야 말로 온갖 장식을 거부하고 강한 흑백 대비의 화면을 성취하려고 했던 모던 디자이너들의 조형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자체였던 거죠. 모더니즘적 실험이 독일을 중심으로 발아했으나 히틀러의 집정과 연이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죠. 하지만 스위스는 정치적 중립국이라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유의지를 여전히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막스 빌(Max Bill)과 같은 스위스 국적의 바우하우스 학생들, 망명한 모던 디자이너들이 모더니즘 디자인의 맥을 이어나갔죠. 2차 대전이 끝난 후 스위스의 하스(Haas) 활자 주조소에서 이 서체를 좀 더 조형적으로 정돈하여 1957년 ‘새로운 하스의 그로테스크(Neue Haas Grotesk)’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는데 영미권의 소비자들을 의식해서인지 좀 쉬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스위스의 옛 이름 ‘Helvetia’를 이용한 ‘헬베티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모더니즘을 이해하고 배우고 싶었던 국가들에서는 ‘헬베티카’를 수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모던 디자인의 시작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2, 30년간 헬베티카가 전 세계 디자인 풍경의 일부가 된 거죠.

 

한편으로는 헬베티카를 싫어하는 디자이너들도 종종 보는데요. 보통 헬베티카 파와 유니버스 파로 나뉘어진다고도 하죠. ‘헬베티카는 청바지이고, 유니버스는 야회복이다.’라고 표현한 디자이너가 있듯. 교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헬베티카에 대해 어떤 주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계시나요

『타이포그라피 투데이』의 저자 헬무트 슈미트 선생님 강연을 한 번 들어보니 그분도 은사인 에밀 루더 선생님처럼 유니버스를 훨씬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도 “헬베티카로 디자인 된 좋은 디자인들도 때로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헬베티카에 대한 경험은 슈미트 선생님과 저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헬베티카를 활용한 훌륭한 디자인 솔루션들을 보여준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의 60-70년대 디자인을 보면 헬베티카가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지만 실제로 활용해 보려고 하면 폼나게 디자인하기가 녹녹한 서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서구 서체 디자인의 역사에서 헬베티카의 위치? 존재감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특히 한국의 타이포그래피 계에서는 헬베티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얼마나 디자이너들에게 선호되어 영향력 있는 시각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활용되느냐를 서체의 성공 조건으로 보자면 헬베티카 만큼 영화를 누린 서체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서서 스위스의 품격 있는 디자인 서적 출판사 ‘라스 뮬러(Lars Müller)’에서 『헬베티카: 서체에의 경의』라는 책을 출판하고 몇 해 전에는 영화의 역사상 처음으로 서체에 조명을 맞춘 <헬베티카>라는 영화까지 나오게 된 것이겠죠. 한국에서의 의미는 글쎄요. 한국의 디자이너들 또한 예전에 비해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문적으로 배우다 보니 헬베티카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또 성장 과정 속 시각적 환경에서 이미 헬베티카가 중심이 되는 로고 타입 등에 노출이 많이 된 것도 이 서체에 대한 친숙함과 애정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 여쭤보자면, 헬베티카가 문화적 브랜드로서 가지는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더니즘’이라고 봅니다. ‘모두를 위한 서체’ 같은 이미지죠. 일본의 인기 브랜드 ‘무지(Muji)’의 디자인 철학이 ‘이것으로 충분하다.’라잖아요? 누구나 쓸 수 있는 서체. 몰개성이 개성인 서체. 그러므로 이런 저런 유행이 밀물과 썰물처럼 지나가도 늘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서체. 이것이 헬베티카의 가치라 봅니다.

 

헬베티카를 좋아하는 디자이너들, 사람들은 그것에서 (대부분) 공통된 특유의 정서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서체는 디자인에 있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며 또한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보 전달을 위한 시각커뮤니케이션은 문자와 이미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중 하나만 사해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면 문자를 택하게 되죠.

문자는 눈으로 읽기 때문에 동시적으로 그 모양을 보게 됩니다. 이 점을 활용해서 시지각과 심리를 움직이는 다양한 문자 디자인이 필요한 거죠. 다양한 매체에서의 편안한 읽기를 위한 서체의 개발과 동시에 브랜드 마케팅의 도구로써 서체의 개발과 활용 또한 점차 커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서구에서 80년대부터 시작된 브랜드 전용서체의 개발이 2003년 현대카드 유엔아이를 시점으로 시각 마케팅의 주요 요소로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상품의 얼굴이 되어주는 것이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면 그 조직이나 상품이 소통해야 할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보내는 메시지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이 저는 전용서체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한 조직과 상품을 둘러싼 모든 경험이 하나로 통일될 때에 하나의 바람직한 이미지, 아이덴티티를 심어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 볼 때 서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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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3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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