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상 수집 에세이



글, 그림. 하람
정리. 김아영



느린 취미를 가진 사람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내 흑백사진 동아리에 들었다. 남대문에서 구입한 중고 필름 카메라를 들고
처음 출사를 갔던 날이 떠오른다. 북촌 한복판에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내가 제법 근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상이나 인화 같은 번거로운 작업엔 흥미가 없었고 지루한 무채색톤 사진만 갖는 것에도 곧 싫증이 났다.


사진이 좋아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흑백사진은 가장 따분한 취미였다.
촬영해놓고 현상하지 못한 필름 몇 롤만 남긴 채 졸업을 했고, 그 후로 수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대부분 들뜬 채로 산다. 쉽게 실증을 내는 성미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신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느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름 사진을 찍고, 도자기를 굽고,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진 세계는 내가 가진 세계보다
훨씬 묵직하고 충만할 거라 믿는다. 번거롭고 느린 취미를 갖는다는 건 변덕 부리지 않는 단단한 태도를 갖는 일과도 같으니까.
그 차분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하다.



가벼운 여행 가방




나는 늘 넘치게 많은 짐을 여행 가방에 구겨 넣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 모든 짐이 완벽히 쓸모 있던 여행은 결국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열흘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길엔 작은 배낭 하나에만 짐을 꾸렸다.
성긴 털실로 짜인 두꺼운 니트와 디지털카메라, 아끼는 목도리는 부피가 커 끝내 짐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꼭 필요한 옷과 생필품만 추려 담고 기념품 넣어 올 빈자리까지 남겨두자, 이틀간 여수 여행을 떠날 때보다
훨씬 가벼운 가방이 됐다. 요즘 부적 ‘가벼운 삶’을 동경한다. 나를 이루는 마음, 나를 둘러싼 공간과 관계가
불필요한 장식 없이 단출하면 좋겠다. 조금 소유하는 대신 더 자유롭고 싶다. 작은 여행 가방처럼,
여백이 많은 그림처럼, 가벼운 리듬의 음악처럼.



- 위 글은 책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을 비롯한 더 많은 에피소드는 책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하람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SK커뮤니케이션즈와 현대카드에서 UI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재미있는 일을 궁리한다. '지금'이라는 단어를 늘 마음에 지니고 산다.
틈틈이 여행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지은 책으로 『지나간 날들에 안부를』이 있다.

www.instagram.com/roco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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