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맛_오늘의 쌈밥

계절의 맛
고요하고 성실하게 일상을 깨우는 음식 이야기



글. 정보화
정리. 김아영



살아 있는 것들은 광합성이 필요해
오늘의 쌈밥



생경하게도 앓아본 적 없는 병에 걸려 며칠째 고통의 밤을 보내고 있다.
불면증은 잘 때도 괴롭고 깨어 있을 때도 괴롭다. 심장은 원래 이리 세게 그리고 빨리 뛰었던가.
쿵쿵거리는 심장 진동이 달팽이관을 자꾸 흔들어 정신을 깨운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나 커피 대문일 거라 짐작해
나름의 조치를 취해보았다. 하지만 깊은 밤에 길들여지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출근길에 병원을 찾았다.


“눈을 감고 손을 쭉 뻗어서 숨을 참고 있어 봐요. 음… 떨림이 심하진 않네. 혈압 한번 재 봅시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쭉 내려 보더니 갑상샘항진증은 아니라고 한다. 안도감에 “다행이네요” 하니 “원인을 알아야 다행인 거죠”라고 말한다.
원인을 시원히 찾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보기로 했다. 두세 가지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결과는 좀 단순했다. 비타민D 결핍이라고 한다. 정상인 수치의 10퍼센트를 겨우 웃도는 상태라고 한다.
부쩍 피로하다 느끼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큰 병이 아닐까 하고 내심 긴장했는데 원인을 알고 나니 한결 시원하다.


“요즘 사람들이 사무실처럼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까 비타민D 결핍이 쉽게 생겨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비타민D 수치를 올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니 삼 개월에 한 번씩 주사 맞고 가세요.
한낮에 산책도 좀 하시면 좋아요. 살아 있는 것들은 원래 광합성이 필요해요.”


회사로 돌아와 볕이 온몸 구석구석에 스밀 수 있도록 마당에 몸을 널어 두었다. 눈을 감고 팔다리를 벌려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좌우로 비틀며 가볍게 스트레칭도 했다. 작정을 하고 식물처럼 볕을 정통으로 맞고 있자니
뜬금없이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돌이키게 된다.






퇴근 후 시장에 들러 청상추, 깻잎, 치커리, 근대, 케일을 섞어 한 봉지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이 제일 오래 걸리므로 불리는 시늉만 하고 서둘러 불에 올렸다. 그 사이 잎채소를 흐르는 물에 두어 번 씻는다.
잘 씻은 잎채소는 물기를 탈탈 털어 채반에 담는다. 오이랑 풋고추도 잘 씻어서 잎채소에 얹는다.
오이는 작은 칼로 껍질을 대강 벗기고 세 토막으로 나눈다. 이제 준비 완료. 잠깐 밥 있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
간단하게 집 정리도 하고 벗어 던진 옷도 잘 걸어놓는다. 대략 시간을 가늠해서 팬을 달구고 기름을 살짝 둘러 버섯과 두부를 가볍게 구웠다.


청상추에 치커리를 겹쳐 현미밥 조금, 버섯과 두부 조금, 고추장을 젓가락 끝으로 살짝 떠 얹어 쌈을 오므렸다.
입을 크게 벌려 한 번에 몰아넣었다. 채소와 밥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안팎의 모양이 달라진다. 먹는 것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왜 제철 해산물과 과채소를 챙기고 때때로 선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우물거리다 보니 알 것 같다.
푸른 채소로 한 끼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사나워진 몸과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동안 너무 쉽게 사나운 것들을 먹고, 빛 한 줌 누릴 여유 없이 살아온 건 아닌지 나를 돌이켜 보았다.

우리는 모두 빛 한 줌, 푸른 한 끼의 처방이 필요하다.



- 위 글은 책 『계절의 맛』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을 비롯한 더 많은 에피소드는 『계절의 맛』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정보화
전북 군산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과 가족을 통해 계절의 맛을 자연스레 익혀
현재는 제철에 나는 먹거기를 유리병 안에 담아 계절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건강하게 계절을 담는 상점 '반테이블'을 운영하며 제품기획과 디자인을 한다.
퇴근 후에는 일상을 짧은 글로 남겼고, 이 글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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