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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디자인 태초의 디자인 - 김혜림 -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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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디자인 태초의 디자인 - 김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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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디자인 태초의 디자인 - 김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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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동 장수길 옛 목공소 자리 앞에서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15미터쯤 올라가면 집주인 할아버지 말씀처럼 ‘아주 새파란’, 하지만 실제로는 옥색에 가까운 대문이 나타난다. 항상 반쯤 열려 있는 작은 대문을 활짝 열 고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욕조와 세면대가 보이고 녹슨 보일러가 버티고 있으며 1미터쯤 높이 위로 방과 이어지는 주방이 보인다. “할아버지, 계세요”라는 물음에도 대답이 안 들린다. 전화로 약속을 한 터라 집을 비우신 것은 아닐까 하는 기우에 방으로 배꼼이 얼굴을 들이미니 옷장 하나, 밥상 하나, 고물 텔레비전과 라디오, 몇 가지 안 되는 옷이 걸려 있는 행거, 큼직한 성경책과 몇몇가지 작은 살림살이가 눈에 띈다. 5평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단출한 공간 한 구석에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몸이 아파 일도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계셨단다. 폐휴지 줍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아들 한 명과 생활보호 대상자인 아버지에게 돈 10만원을 꾸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딸 한 명이 가족의 전부인 정 할아버지. 당신이 소싯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었다며 영광스러웠던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어김없이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랬던 분이 어떠한 일로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이야기를 한참 아끼신다. 단테가 “현재가 불행한 상태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정 할아버지는, 그렇게 고통스럽고 불행해보였다.

사케르 중의 사케르, 지울 수 없는 얼룩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부시코>라는 영화가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일본의 한 촌에서 갓 태어난 사내아이는 쓸모없는 식충이며 70세가 된 노인의 생명은 효용가치를 다한 처분대상이다. 아들의 등에 업혀 고려장(高麗葬)처럼 나라야마산의 꼭대기에 오르는 69세의 노인은 얼음바위 위에서 아들을 돌려보내며 자신의 죽음을 초연히 맞이한다. 이처럼 생명에 대한 법적가치를 잃어 죽여도 살인죄가 아니고, 신에게 제물로 바쳐질 정도의 가치도 없는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는 인간 사이에서의 암묵적 가치를 잃고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디자인 사케르’. 자본 가치에게 버림받고, 자본과는 거리가 먼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서 존재하는 디자인들…. 서울 곳곳에 자리 잡은‘ 디자인 사케르’적인 공간은 신상 벽걸이 텔레비전 뒷면의 눈에 띄지 않는 얼룩처럼 존재를 외면당한 채 공존 한다. 종로구 삼선동 제 4구역 장수마을은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사케르다. 이곳은 다른 구역이 모두 재개발에 흥이 겨워 플랜카드를 매달고 부동산업자들의 발자국이 부지런히 새겨질 때에도, 가파른데다가 성곽과 같은 문화재가 자리 잡은 지형적 특징 때문에 개발해봤자 손익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으로부터 외면당했다. 현대적 디자인과 자본으로부터 격리된 공간, 삶은 여전히 회전하지만 타인의 획일적 시선에 의해 버려지거나 망각되어진 공간, 그 삼선동 장수마을에서도 정 할아버지의 공간은 디자인 사케르 중의 사케르였다.

 

사케르의 영역에서 찾아보는 태초의 디자인

하루 한 끼 한성대학교 사회복지과에서 보내주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다는 정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심한 당뇨병까지 안고 있다. 방세를 내기 위해 아침마다 폐휴지를 주워 돈으로 바꾸고, 그나마 몸이 아픈 날엔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다행히 주변에서 구청에 사정을 전하여 아들이 있음에도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한 달에 기 십 만원의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내일은커녕 오늘을 채우기에도 급급한 삶. 정 할아버지는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 5단계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조차 해결이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사케르 중의 사케르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공간에서 욕구의 상위 개념으로 통하는 디자인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태초의 디자인이 아닐까.

라디오 : 본질 그리고 소통하기

세상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라디오 본연의 모습만이 할아버지에게 중요할 뿐이다. 그것은 일방적인 수신일지라도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열망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라디오를 켜놓고 계신다. 낭랑한 아나운서의 맛깔스러운 해설이 끝나면 질펀한 성인 가요가 좁은 방에 울린다. 다른 사람과 대화 중일 때에도, 심지어는 주무실 때도 할아버지의 라디오는 계속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할아버지, 라디오는 할아버지에게 무엇이에요” “ 어… 친구지요. 나에게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에요. 텔레비전은 못써요. 혼자 떠들거든.” 폐휴지를 줍다가 구했다는 조그만 미니 카세트는 할아버지 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라디오는 세상과 소통을 하 게 해주는 예쁜 물건이다. 예쁘다는 것은 라디오의 모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라디오의 형태, 가격, 심미성, 의미들은 크게 상관없는 부분이다. 주파수가 맞춰지고 세상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라디오 본연의 모습만이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라디오의 존재이유다. 빅터 파파넥이 제 3세계를 위해 디자인한 9센트짜리 깡통 라디오처럼 소통의 통로로서의 역할만 한다면 그것이 라디오에게 가장 충실한 디자인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멋지고 비싼 라디오가 아니다. 세상에게 외면당했지만 외로운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 또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기에 할아버지의 라디오는 꺼지지 않는다. 바로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열린 대문 : 타인과 관계 맺기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자아를 인식한다. 관계 맺기에서 소외된 자아는 일방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보낸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나의 문은 열려있으니 누구든 환영한다고. 이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 찾아올 사람은 없으나 누구라도 찾아왔으면 좋겠고, 가져갈 물건이 없으니 도둑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일신의 쇠락함에서 오는 안전에 대한 불감증도 할아버지의 옥색 대문을 항상 열려 있게 만든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들어오지 못한다. 그것이 유토피아 세상에서의 암묵적 약속이다. 도시락을 배달하러 온 어린 학생도 할아버지를 밖에서 애타게 부르기만 할 뿐, 열린 대문사이로 들어와 할아버지와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대문을 통해 할아버지는 오고 가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욕망하지만 대문 밖 세상에서는 모르는 타인과 ‘구분 짓기’를 원한다. 세상을 향해 열린 할아버지의 대문과 그 안으로 들어가길 두려워하는 타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의 현실을 본다. 관계 맺기를 희망하고, 동시에 차단하기를 희망하는 여러 의미의 디자인들의 전형을 본다.

 

 

가스레인지 : 일상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 가꾸기

최소한의 환경에서 가꾸고 보살피고자 하는 노력은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다 나은 삶으로 변화하고픈 욕망이 꿈틀댄다. 그것을 해결하는 능력이 바로 디자인 능력이다.

 

처음 할아버지의 집에 방문했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할아버지의 가스레인지가 초록색이었다는 점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가스레인지. 할아버지의 다른 물건들처럼 그것도 일하시던 중 버려진 걸 가져 온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냥 쓰기에는 너무 더럽고 볼품없어서 초록색 페인트를 구해와 칠하셨다고 한다. 가만 살펴보니 싱크대도 예사롭지 않다. 본래의 것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찬장의 꽃무늬 시트지. 할아버지의 부엌에서 인간의 본성에는 디자인적 능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에도 만족스럽지 않은 삶에서 일상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욕구와 능력,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최소한의 것으로 보다 나은 삶으로 변화시키려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디자인 능력임을 할아버지의 가스레인지는 말해주었다.

 

 

압력밥솥 : 새로운 것을 욕망하기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서도 새로운 물건을 계속해서 염원하는 것. 그것이 있기에 디자인이 존재할 수 있다. 디자인 사케르의 공간에서도 그런 열망은 계속된다.

 

할아버지의 대화 중 가장 자주 나온 낱말이 바로 ‘압력밥솥’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2~3인용 전기밥솥이 아닌 “이도 성치 않은데 고구마도 찔 수 있고, 고기도 삶고, 밥도 하는 12만 8천원짜리 압력밥솥”이 할아버지에 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갖고 싶은, 그러나 사정상 너무나도 갖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원하는 기능이 다 있다는 그 압력 밥솥에 십만원이 넘는 금액은 철옹성보다도 더 높고 단단한 장애물이다. 그렇기에 처음 만나는 젊은이에게 틈만 나면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해 자세하게도 설명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힘든 삶을 공개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할아버지에게 압력밥솥은 눈물이 나도록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현재도 포기하기 쉬운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욕망을 버리지 않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다. 할아버지의 압력밥솥은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욕망의 대상이다. 무엇인가를 꿈꾸게 하는 대상이 있는 한 디자인은 지속된다.

 

삼선동의 정할아버지의 공간은 디자인 사케르 중의 사케르, 얼룩 중에서도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얼룩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라디오는 소통하고자 하고, 열린 대문은 관계하기를 열망하며, 가스레인지는 삶을 가꾸고자 하고, 압력밥솥은 욕망을 꿈꾸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최소의 욕구조차 해결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삶을 놓지 않고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자 희망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태초의 디자인이다.

 

김혜림 |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 글을 담은 비평집을 발간한 뒤 감사한 마음에 팀에서 할아버지께 압력밥솥을 선물해 드렸다. 선물을 받고 눈물까지 흘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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