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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DESIGN / 손재익

 

손재익 • 플럭서스 뮤직

국내 음반 디자인계에서 손재익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전체(레이블의 아이덴티티)와 세부(개별 뮤지션의 음반디자인)를 관할하는 아트 디렉터로서 한 레이블을 전담해온 디자이너는 적어도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8년 동안 플럭서스 뮤직의 디자이너로서 주목할만한 음반 디자인을 발표해온, 불혹을 넘긴 이 '젊은' 디자이너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디자인이 더 많다고 말한다.

에디터 이상현

 

그간 음반 디자인을 담당했던 뮤지션들은

플럭서스 뮤직에 소속된 모든 뮤지션들이다. 클래지콰이, 알렉스, 이바디, 러브홀릭, 이승열, W&Whale, 어반 자카파, 양진석, 테이(핸섬 피플) 등의 앨범 디자인은 물론 공연 포스터, 앱 어플리케이션 등 디자인 전반을 도맡고 있다. 한편 자우림, 김윤아, 한영애, 백지영 등 타 소속사 뮤지션들의 음반 디자인도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으며, 최근 엠넷의 공연 관련 포스터도 전부 디자인하고 있다.

음반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그리고 어떤 점에 매혹되었다고 생각하나

원래 오랜 시간 패션 광고를 만들어왔다. 차츰 연륜과 통찰력이 생기면서 인테리어, 전시, 동영상 등 맡게 되는 영역이 자연스럽게 넓어지더라. 음반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첫 앨범은 93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윤석화의 <별, 바람, 하늘, 꽃>이었다. 윤석화의 그림과,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손 글씨로 디자인을 했고 특이하게도 크라프트지를 사용해 패키지를 완성했었다. 소재 사용이나 디자인적인 시도, 뮤지션과의 교감 등이 비교하자면 신선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패션 광고가 상업적인 접근을 요구한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과 디자이너로서의 표현이 음반 디자인에서는 훨씬 용이한 점을 매력으로 느끼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원채 음악을 좋아한다. 오디오도 몇 개 가지고 있고, 소장하는 음반도 수천 장이다.

플럭서스 뮤직과는 어떻게 연을 맺었나.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이렇게 장기간 동안 아트디렉터로서 레이블의 색깔을 만들어낸 사례가 국내에선 거의 드물지 않나 싶다

플럭서스 뮤직의 김병찬 대표와는, 1993년 즈음 ‘난장’이라는 회사에서 자우림 앨범 디자인을 만들면서 연을 맺었다. 난장이 T엔터테인먼트에 합병 되었고, 이후 김 대표가 독립해서 플럭서스 뮤직을 설립한 후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레이블의 디자인을 책임져온 셈이다. 처음 이 얘기가 오갔을 때, 나 역시 디자이너 개인이 레이블 전체를 맡는 게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애초에 김 대표에게, 나는 한 사람의 디자이너지만 뮤지션마다 각기 다른 디자이너가 한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 그러면서 플럭서스 뮤직이라는 레이블의 전체적인 아이덴티티를 동시에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전달했다. 그 예로 아이덴티티 유지를 위해서 매 앨범에 플럭서스만의 실제 라벨을 붙이는데, 레이블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디테일이라고 하더라. 지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굉장히 노력했고, 스스로 그 점에 대해서는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속 뮤지션들과의 의사소통이 아무래도 수월할 것 같다. 의사소통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뮤지션들과는 무척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식구들처럼 아주 편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다. 대개는 일단 유명 사진작가가 뮤지션의 사진부터 찍는 것으로 시작, 그 결과물의 후반작업을 디자이너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플럭서스는 애초에 뮤지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진으로 할지, 그림으로 할지 먼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이젠 클래지콰이의 상징이 된 돼지 아이콘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방식이 나는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능하다면 소속 뮤지션과의 교감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이건 나와 소속사 대표의 공통된 의견이다. 어반 자파카의 경우 소속 뮤지션이 사진을 직접 찍었고, 러브홀릭도 멤버의 그림을 음반 디자인에 사용했다. 바로 그 점이 거창한 패키지가 아니더라도 플럭서스의 앨범 디자인이 돋보일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업은 뭔가

뮤지션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진 디자인이 나중에 더 흡족하다. 한영애의 <Behind Time>도 그런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굉장히 기분 좋게 작업을 했다. 워낙 존경했던 아티스트이기도 했고. 김윤아의 첫 솔로 앨범도 책 형식으로 나왔는데, 편집디자인이 여전히 마음에 든다. 그때 가까워져서 윤아의 결혼식 주례까지 섰었다. (웃음) 클래지콰이 1집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디자이너로서 굉장히 다른 유니크한 음반 디자인의 영역을 이 앨범으로 만들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번에 나온 백지영 8집 앨범도 손꼽고 싶다. 이번 앨범은 다섯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서로 다르게 스타일링을 해서 마치 잡지처럼 부클릿을 만들었는데, 제목도 팔색조라는 뜻의 <피타(PITTA)>라고 지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음반 디자이너의 입지가 생각보다 적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음반 디자인이 산업화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다. 관련 전문 디자이너를 다수 배출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음반 디자인은, 지금 내가 하는 여러 작업 중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또한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편이다. 대부분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의 후반 작업을 맡는 게 디자이너라고 할까. 그만큼 전문 영역으로 완성되기에 한계가 있는 거다. 그런 상황이니까 아무래도 내가 돋보이는 거 같다.

8년을 몸소 겪어오면서 음반 시장의 다급한 변화를 체감하나

물론이다. MP3 시대가 완전히 정착한 것 같다. 우리 딸만 해도 중학교 때는 음반을 자주 샀는데,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거의 음반을 사지 않더라. 굉장히 슬픈 일이다. 책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나 같은 아날로그 취향의 사람은 직접 만져보고 소장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요즘 사람들은 정보만 중요하지 책의 질감이나 느낌, 냄새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음반 자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젠 앨범이 나와도 커버 한 장만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그 방편으로 소장성을 높인 음반 디자인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 앨범은 거의 선물 상자 수준이지 않나. 그런데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도 마찬가지다. 주얼리 케이스에서 디지팩으로 전환을 한다거나. 디지팩도 볼륨이나 크기를 달리하는 등 전보다는 훨씬 소장성을 강화해서 만들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디자이너들에게 훨씬 더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최근에는 LP 음반을 내는 경우도 있지 않나. 지금의 음반 디자이너들은 LP 디자인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오히려 전보다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플럭서스 역시 그런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복합적인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다양한 후가공법을 활용한 패키지 디자인을 시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내가 맡은 디자인이 아주 대중적이고 높은 판매를 기대하는 음반이 아닌 이유도 있다. (대중적인 음반은 이미 말 그대로 대중적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투자가 많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오래 전부터 음악의 본질은 음악이지 디자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플럭서스 뮤직 역시 음악성에 치중한 레이블이고. 따라서 아티스트의 성격을 진지하게 담아내되 디자인적으로 그래픽이나 일러스트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유니크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점이 오히려 플럭서스의 특징처럼 남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음악에 있어서 디자인이 하는(해줬으면 하는)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단 몇 초만에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지 않나. 따라서 사실 음악에서 디자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디자인은 음악을 보완하는 역할, 음악을 표현해주는 또 다른 수단일 뿐 음악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넘어설 순 없는 것 같다.

산울림의 모든 앨범을 꼽고 싶다. LP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된 디자인–타이포그래피와 크래용으로 낙서하듯 그려진 그림 사용-을 유지하면서 아이덴티티를 지켜온 최초이자 유일한 밴드가 아닌가 싶다. 우연찮게 리패키지 앨범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원본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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