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작가주의 그림책 작가들_백희나

Special Feature____에디터 박현진. 자료협조 시공주니어

 

백희나

1971년생.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구름빵』으로 2005년 볼로냐아동도서전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 『북풍을 찾아간 소년』, 1인 출판사 ‘스토리보울’을 설립하고 만든 『달 샤베트』와 『어제 저녁』 등의 작품이 있다.

 

백희나____________________

백희나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삶이 힘들 때마다 넘겨보며 소소한 웃음과 위안을 줄 수 있는 따뜻한 그림책. 지금까지 백희나의 작품들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당연한 이유는 그녀가 온기 어린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되었나____교육공학을 전공하면서 교육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교육을 위한 다양한 매체를 다루어 본 경험 또한 긍정적이었고, 졸업 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시청각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 자신이 아이들의 세계에 숨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현실은 동화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해야 하기도 하고. 나는 그런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던 탓에, 그림책처럼 권선징악적 원리대로 돌아가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세상에 숨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지만, 어른으로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은 힘이 없고 나약한 존재인 만큼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고, 삶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즐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 그런 위로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니 내가 살아온 모든 과정이 그림책을 만드는 것에 필요한 것이었던 것 같다.

 

당신에게 ‘그림책’이라는 매체는 어떤 의미인가____어렸을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했다. 책은 비교적 원시적인 매체이지않나. 간직할 수 있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볼 수 있고, 그림과 이야기가 있고… 그런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너무 좋다. 한편으로는 형식적으로 굉장히 제한되어 있는 매체이기도 한데, 가운데가 나뉘어져 있는 점, 종이로 만들어진 점, 넘기는 속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점 등이 그렇다. 이런 한계 속에서 스토리텔링과 연출이 가능한 점이 재미있다. 텍스트와 그림의 양, 단순함과 복잡함에 의해 페이스 조절이 가능하고, 같은 크기의 종이어도 접어서 넣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며 스토리가 점점 진화된다. 이처럼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상상력과 연출력으로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게 가능한 것은 큰 매력이다.

 

구체적인 작업과정을 말해달라____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그곳에 그림과 글을 같이 정리해 둔다. 어떤 것은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완성하고, 어떤 것은 이야기가 완성되면 어떤 분위기와 느낌으로 진행할 지 화면을 정리한 후 스토리보드를 그린다. 그 후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은 다음 더미북을 만든다. 그림 스타일을 정해서 더미북을 만들고 나면 가능한 오랫동안 보지 않고 덮어두는데 시간이 지난 후 처음 보는 독자 입장에서 다시 살펴 보는 편이다. 면지, 도비라, 속지, 등등을 어떤 느낌인지 살피고, 됐다 싶으면 작업에 들어간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더미북을 만든 지는 2년 정도 됐는데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몇 달 동안 고민한 다음에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____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지금도 두 세 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맞물려서 진행된다. 『달샤베트』도 제작기간은 15개월 정도 걸리긴 했지만, 세트를 모으는 것부터 따지면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만들어 왔다. 준비를 미리미리 계속하고 있으니 본격 제작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의 작품들이 사랑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____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중요한 임무는 결국 스토리를 받쳐주는 것이고, 최대한 스토리를 ‘들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구름빵』 같은 경우도 비 오는 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입체로 작업했다. 더미북 스케치가 느낌은 좋았지만 디자인 자체는 평면적이었다. 그것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평면적인 것을 삼차원적으로 배치해 찍었고, 이를 고집했던 이유는 조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은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 있고, 푸르스름하고 축축한 공간 속에서 켜진 신호등이나 자동차 불빛이 주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그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집의 실내는 백열등을 써서 노랗게 표현하고, 엄마가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의 그림자 같은 따뜻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달샤베트』는 장난감 같고 세트 같은 아파트의 느낌, 『어제 저녁』은 동물들이 복닥복닥 살아가는 공간적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데, 결국은 모두 스토리를 위한 것이다.

 

<구름빵> 한솔수북, 2004

 

그만큼 공간과 빛이 주는 느낌이 작품들의 중요한 요소이다. 사진 촬영 또한 관건일 것 같다____『구름빵』과 『달샤베트』는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트도 크고, 밤하늘이 배경이었고, 조명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터라 전문 사진작가에게 의뢰를 했다. 『어제 저녁』은 직접 촬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겨울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찍어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 정도 수준이라면 내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토리 상으로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물들의 이야기라 조명이 거의 비슷했다. 물론 전문가가 보면 아쉬운 점이 있겠지만, 나는 사진도 결국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배경과 실루엣, 그리고 소품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장면, 어떤 하모니를 느끼게 해주는 구성이 나오게 하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주며 많은 테스트를 했고, 스스로는 만족스러웠다.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____작품마다 다르다. 『달샤베트』는 글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더운 여름날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는 시원해도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나무와 풀 같은 자연물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어제 저녁』은 인형부터 만들었는데, 인형들 모두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캐릭터부터 시작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구름빵』은 출판사에서 판타지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었고, 당시 내가 비가 오는 것이 그리웠기 때문에 비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이다. 요즘 새로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 작업은 딸이 이야기해 줬다. 참 든든한 딸이다.(웃음)

 

좋아하는 그림책, 그림책 작가____비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을 아주 좋아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또 안느 에르보와 스기우라 한모도 좋아한다. 한국 작가는 작품별로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에 본 것 중에는 손지희의 『지옥탕』이 좋았다. 만화책도 좋아하는데, <서양골동양과자점>의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를 좋아한다. 최근에 본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를 추천한다.(웃음)

 

그림책 작업을 할 때, 신체의 어느 부위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나____의외로 머리를 많이 쓰는 것 같다.(웃음) 이것은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작업이 어떤 예술작품이나 회화 같은 가치는 없다고 본다. 내 안의 어떤 것을 끄집어 내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보다는 작업을 통해 누군가를 즐겁게, 재미있게 해 주고 싶은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것 같다.(웃음) 그렇다 보니 그림을 완성해 갈 때 감정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머리로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스토리를 연출한다던가, 페이스 조절을 한다던가, 미디움을 선택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부분들은 감성적으로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해 세우는 전략들인 거다. 이것이 자랑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가 소위 아티스트적이라고 말하는 경험이 별로 없고, 그렇게 작업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연출하려는 경향이 큰 것 아닐까 싶다.

 

<달 샤베트> 제작 스틸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만한 현실적 조건이 모두 갖춰진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____그런 것은 상상도 안 해봤다. 지금은 고정적인 스태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집사 같은.(웃음) 관리나 전반적인 사무, 영업과 마케팅도 하는.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답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것 외에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 작업실도 원했던 환경을 찾은 것 같고. 물론 출판을 혼자 하는 것이 어렵다. 작업과 출판 일이 좀 더 완벽하게 분리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위해 스태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요즘 드라마 형식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함께 하는 스태프가 있으니 너무 좋더라.

 

저작권과 관련해서 많은 피해가 있었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신인들이 나 그림책 작가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____『구름빵』 같은 경우는 물론 외부적인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따지고 들면 일차적인 잘못은 결국 나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아무도 내 작품에 가치를 부여해 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그것의 가치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내 작품의 가능성과 가치를 스스로가 인정하고, 아무리 신인이더라도 자신감 있게 얘기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내 작품에 대한 가치를 폄하했던 거다. 또 작가는 조건을 따지고 들면 이상해 보이는 정서가 있는 것 같은데, 설사 그렇더라도 스스로가 휩쓸려서 본인의 작품을 낮게 보면 안 된다. 내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달샤베트』의 법적 해결을 위한 소송을 놓고도 고민이 많았다. 시간도 많이 뺏기고, 세상 어딘가에 서는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심각한 문제들도 많은데, 굳이 내 것 네 것을 따지고 있어야 하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모로 내적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 때문에 비슷한 문제들이 되풀이 되고, 선례가 되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것 같고, 화를 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하지만, 여기 빼앗길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만드는 것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아직 생각이 완벽히 정리되진 않았다.

 

본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____떠나 보내고 나면 미련이 없어지는 것 같다. 아니면 『구름빵』 때문에 끊어버리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작업하는 과정 중에는 컬러 하나, 톤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미련이 없어지는 편이다. 아마도, 상처로 남지 않았다면 『구름빵』에 가장 애착이 갔을 것이다. 요즘은 『어제 저녁』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내가 독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책인 것 같다. 어느 날 밤, 입원 중이시던 어머니의 병실에 앉아 있던 적이 있는데, 그 책이 간절히 보고 싶더라. 내가 만들었지만 참 좋아하는 작업이다.

『어제 저녁』의 병풍처럼 접히고, 펼쳐지는 내지 구조가 특이했다. 전반적으로 북디자인 에서 의도한 바가 있는가____처음엔 될 수 있으면 표지와 내지를 모두 같은 두께와 크기로 하고 싶었다. 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작비 면에서 간단치가 않았고, 『달샤베트』를 제작해보니 책 사이즈가 판매에 주는 영향이 크더라. 전에는 장정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 같다. 내지의 구조는, 앞면에서 사건들이 줄줄이 벌어지면서 크고 작은 불행을 초래했고, 뒷면을 넘기면서 줄줄이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거의 동일선상에서 동시간대에 이루어지는 일이자, 같은 아파트에 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그냥 넘기는 것이었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달 샤베트> 스토리보울, 2010

 

<어제 저녁> 스토리보울, 2011

 

 

 

 

 

 

*본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11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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