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Essay / 우리를 들여다본 사람, 그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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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들여다본 사람,

그를 들여다보다

 

글. 김아영

에디터. 이찬희

 

세상은 미친 사람을 사랑한다. 제정신 박힌 사람들이 안 된다 하는 일을 된다고 우기고 또 해내는 사람, 아이처럼 자신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기행을 일삼으며 거침없이 사는 사람. 부러워하고 사랑하고 추종할 수밖에 없다. 단, 조금만 미쳐야 된다. 이렇게 살짝 미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기업가를 넘어 거대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교주 수준의 인기를 누린 스티브 잡스. 그의 전기가 전 세계적으로 연일 판매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자료와 정보가 돌아다니지만,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그의 특별함을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춘 렌즈로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살짝 미친 슈퍼스타

 

잡스가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이 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데는 남 들이 생각지 못한 분야에 대담하게 발을 들여놓고 자기의 생각을 밀고 나갔던 점이 크게 기여했다. 과거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남다른 성실함과 끈기, 양심을 흔히 꼽았던 반면, 최근에는 일종의 조증(躁症) 기질을 꼽기도 한다. 미국 ABC방송국에서는 성공의 대명사인 도널드 트럼프, 오프라 윈프리와 더불어 잡스에게도 가벼운 조증 기질이 있다고 보도했다. 조증을 연구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존 가트너(John Gartner)에 따르면 이런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미래를 낙관하며 일에 몰두하고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있다고 한다. 말이 좋아 긍정적이지 사실 옆에서 보면 ‘저 사람 좀 이상한 거 아냐?’ 할 정도로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망상이야 말로 잡스와 애플사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성향은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잡스의 주변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불가사의한 에너지장이 펼쳐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붙여준 말이다. 이 말은 그만큼 목표에 대한 잡스의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영향을 준다는 증거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분야에 손을 댈 때 보통은 실패의 가능성을 먼저 떠올리고 두려움과 떨림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잡스의 행보에 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주변 사람까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견해를 확신했던 나머지 현실 왜곡장이라는 말까지 붙은 것을 보면 잡스의 성공과 인기에 가벼운 조증 기질이 크게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누구나 겁내는 일에 대담하게 들이대는 사람, 매력적이지 않은가.

 

하루를 마지막처럼, 몰입

 

또 하나, 잡스의 심리적 특징으로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가 말하는 몰입(flow)을 들 수 있다. 몰입이란 자신을 잊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빠져들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상태다. 즉 극도로 집중함으로써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리거나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매달리려면 부정적인 가능성을 상상하거나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잡스는 가벼운 조증이라는 기질에 힘입어 긍정적인 가능성을 훨씬 크게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일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그는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려 한다고 말한 바 있고, 전기에서도 중요한 순간에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묻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런 태도는 쓸데없는 감정이나 걱정을 지우고 눈 앞의 일, 마음 속의 목소리에극도로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보통 이런 성향은 큰 병을 앓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에게서 종종 보인다. 흔히 ‘죽다 살아난’ 사람은 후회를 남기지 않고 살아야 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부터 집요하게 ‘선(禪)’을 추구하고 환각제를 이용하며 까다로운 채식을 하는 등, 극단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러한 집중력과 몰입의 비결인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 성공을 얻어내고 전 세계에 수많은 추종자까지 거느릴 수 있었다.

 

아, 나쁜 남자

 

잡스와 애플사의 제품에 충성도 높은 고객이 그리도 많은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주된 이유는 바로 유저 중심의 직관적인 설계와 심플을 넘어 심오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름다운 디자인에 있다. 여기에 애플이라는 기업과 잡스라는 사람 고유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이런 요소들은 단순한 구매 욕구를 넘어 깊은 곳의 심리를 건드리고, 결국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추종자와 마니아를 만들어낸다. 자신의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끝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은 인문학에 깊이 심취했던 잡스에게 탁월한 심리학적 직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잡스와 애플의 제품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어떤 심리적 포인트를 건드렸는지는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라겠지만, 단순한 거래관계를 떠나 소비자를 묘하게 열광적인 추종자로 만들었던 요소는 크게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소비자를 열광적인 신도로 만들었던 요소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잡스 자신의 카리스마와 이미지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곧 애플사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철학은 경영과 제품 구석 구석까지 스며있다. 따라서 오래도록 선(禪)에 심취한 덕에 불필요하게 둘러가지 않고 똑바로 자기 목소리를 따라 곧바로 본질을 추구했던 그의 성향과 이미지는 애플사 자체의 이미지에 정확히 덧씌워진다. 시대를 불문하고 반항아가 사랑 받는 이유는 무모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면이 동경과 부러움을 불러일으켜서다. 사실 개인적으로 잡스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거나 부러움을 살 만한 인생은 아니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기행을 일삼고 심지어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던 잡스는 일종의 동경과 더불어 거대 기업가에게 느끼기 어려운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는 한편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들과의 필연적인 인연과 잡스 자신의 남다른 언행은 지켜보는 대중의 심리에 일종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해준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유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나, 하나뿐인 나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별한 색이나 물품으로 자신이 지배계급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시절까지 굳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런 심리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 더 이상 심플할 수 없는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으면 성능이나 가격 같은 합리적인 요소는 머릿속을 떠나고, 이 물건을 가지면 나도 이렇게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풍길 수 있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된다. 앞서 말한 잡스와 애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작용함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불친절한 서비스와 비싼 가격 등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애플 제품이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데는 이러한 심리가 배경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 잡스의 방식은 연애 심리와 비슷한 구매 심리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일반적으로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인기가 있지만, 사람이란 무작정 나를 떠받들어주는 사람보다는 조금 까칠하게 나오는 상대에게 좀 더 관심이 가는 법. 이를테면 ‘밀당’을 잘하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는 이치와 비슷하다. 친절한 기업들이 매력요소를 두루 갖추고 고객에게 어필하려고 애쓸 때, 잡스와 애플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듯 소비자의 표현 욕구를 자극하는 제품을 만들어 쿨하게 던지며 ‘갖고 싶지? 그럼 사!’라는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잡스가 직접 승인을 내렸다는 온갖 광고에서도 영화처럼 화려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깔끔한 내레이션을 넣어 이 제품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줄지를 간단히 보여주면 그만이다. 이들은 거만하게 저울질하며 선택하는 자리에 앉아있던 소비자를 추종자의 위치로 끌어내리지만, 그러면서도 박스를 열고 제품을 꺼내기까지 일련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듯이 배치하는 세심한 배려를 시작으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구축해놓아 사용자가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에 접근하기 쉽도록 한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제작자와 간접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멋있고 다정하고 나쁜 남자, 이 치명적인 매력에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더 활발히 교환되는 사회일수록 기술의 격차는 점점 작아진다. 대신 결국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기술을 선택할지 등 사람의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를 결정한다. 잡스는 겉으로 보면 전자기기를 만들어 팔았던 엔지니어이자 기업가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심취했던 인문학을 바탕 삼아 인간에 대한 통찰을 활용했기에 소비자도 몰랐던 욕망을 캐내고 충족해줌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여기에는 타고난 기질에 힘입어 자신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귀 기울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밀고 나갔던 일관성 있는 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자기의 욕망이나 꿈을 포기해야 더 어른스럽고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고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 속 목소리를 따르는 일은 쉽지 않은 만큼, 수많은 이해관계에 얽힌 거대 기업가가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고 혁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들 알다시피 잡스는 도덕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그리 바람직하게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학창시절부터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친딸을 외면하려 하거나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자기가 영입한 사람에게 쫓겨나는 등, 어찌 보면 자빠지고 구덩이에 빠지면서 힘겹게 살아왔다는 느낌까지 드는 괴팍한 사람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일에 어설프게 희생하려 하지 않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삽질’마저 인간미 넘치는 생생한 삶의 여정으로 보인다. 마치 흑백 세상에서 생생한 컬러를 홀로뽐내듯 패기 넘치는 이 남자는 일생을 바쳐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하룻밤 줄서 기다리는 것쯤은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모자라다고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아영

전문번역가,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재학 중 인간심리와 정신세계에 대한 심대한 관심으로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로 재입학하여 심리학을 전공. 현재 ‘바른번역’ 소속으로 도서기획, 전문번역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다. 직접 기획, 옮긴 책으로 『문학 속에서 고양이를 만나다』와 옮긴 책으로 『우리 아이의머릿속』 『내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첫 정의 수업』 『내 아이를 위한 7가지 인생기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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