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또 다른 좋은 북디자인

 

 

 

강병융

『상상인간 이야기』, 『무진장』이라는 소설을 썼으며, 지금은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라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뭔가 거짓말을 꾸준히 쓸 예정입니다.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쓰기’, ‘세계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가르칠 생각입니다.

 

텍스트를 잘 이해한 ‘한국의’ 북디자인를 찾아달라는 설문이었는데, 대략 난감하다. 디자인을 보는 눈이 없는 주제(!)라서. 그래서 내린 결단은 내가 감히 좋아하는 북디자인. 어쩌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들?

 

1.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열림원, 1998

중요한 것은 와다 마코토의 그림이다. 하루키는 두 명의 삽화가 와다 마코토, 안자이 미즈마루와 공동작업을 많이 하는데, 개인적으로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더 좋지만, 재즈에는 와다 마코토가 더 어울리는 듯. 놀랍게도 와다 마코토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북 디자이너이면서 담배 ‘하이라이트’의 패키지 디자인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번역, 작사에 작곡까지 하는 엄친아 아티스트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 더 추천하자면,

 

2. 『또하나의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까치글방, 2002

참, 더 중요한 것을 빼먹었는데, 그건 내가 하루키와 재즈를 좋아한다는 사실. 무지!

 

3.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2(개정판)

최근 사라마구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표지만 머릿속에 남았다. 책 한 권이 머리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잡스러운 말 대신, 책 앞에 박혀 있던,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이런 말을 전하는 게 낫겠군.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어떤 위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른바 ‘포스’가 넘친다. 표지에서 만나는 거장들의 얼굴에서부터 선택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혹은 읽지 않으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가 폴폴 난다. 앞 테, 뒤 테, 옆 테까지 일관성 있어서 좋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좋다’라는 말이 작품 때문에 나오는 것인지, 북디자인 때문인지 장담할 순 없다.

 

김사과

소설가.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그리고 소설집으로 『02』가 있다.

 

1.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김종철, 녹색평론사, 2008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잡지 <녹색평론>과 녹색평론사를 이끌어온 김종철이 그동안 써온 녹색평론의 서문을 모아서 낸 책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가볍고 작은 회색 책은 겉과 속 모두 녹색평론의 이념에 걸맞게 낭비 없이 꼭 필요한 만큼 디자인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2.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끄상뻬, 열린책들, 1999

이제는 절판된 열린책들 판본의 『얼굴빨개지는 아이』의 표지. 검은색의 한국어 제목, 빨간색의 불어제목, 빨개진 얼굴의 주인공 마르슬랭, 그리고 열린책들 로고만으로 이루어진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이 인상적. 그림책임에도 표지에서 최대한 그림을 절제한 점이 마음에 든다.

 

3. 『A Clockwork Orange』 Anthony Burgess, penguin classics, 2000

표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가득 찬 우유 잔을 보는 순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포함하여 시계태엽 오렌지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있지만, 이것만큼 위트 있게 이 이야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없었던 것 같다.

 

 

 

 

김선미

현대기아 매거진 편집장이며 디자인 문화 비평 블로그인 <디자인 읽기>, 디자인 담론에 관한 인터넷 방송 <디자인 말하기>에서 활동 중이다. 디자인 관련 저서로 『친절한 뉴욕』(2008)과 『친절한 북유럽』(2011)이 있다.

 

1.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트 에코, 열린책들, 2009

소설, 동화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술을 담은 움베르트 에코 저작집. 2004년 처음 기획된 후 5년간에 걸친 작업 끝에 출간된 보물이다. 총 2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23번째 컬렉션인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은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문화비평가로서의 움베르트 에코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작 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열린책들 작품답게 정교하고 담백한 내지 디자인이 텍스트로의 집중을 묵묵히 독려한다. 이 책은 실로 꿰매는 정통적인 사철 방식으로 제작해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방식 또한 글의 가치를 방증하는 셈.

 

2. 『기형도 전집』 기형도, 문학과지성사, 1999

시인 기형도가 세상을 떠난 후 기형도 전집 편집위원회가 엮은 그의 작품집. 시, 소설, 산문, 자료 등 속성이 전혀 다른 작품들이 어색하지 않게 한 권 안에서 어우러져 있다. 표지의 제목 글자는 시인이 아끼던 수동 타자기로 직접 타자한 것을 집자 한 것으로 이 땅에 없는 기형도를 막연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3. 『설운 서른』 김종길 외, 버티고, 2008

나희덕, 최승자, 기형도, 홍지우 등 시인 50명이 ‘서른’에 대한 시를 노래했다. 먹먹한 제목의 이 시집은 근래 보기 드문 세로쓰기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어 하나하나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한두 번 읽어서는 내용이 바로 입력되지 않는 혼란이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혼란의 시간이 사유의 시간과 정확히 비례함을 느낄 수 있다. 세로쓰기 전용서체 꽃길체를 사용해 시각적인 단정함마저 갖췄다. 책에서는 세로쓰기에 대한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글은 세로쓰기 할 때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며 글을 천천히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써 내려간 시어와 문장들, 그 사유의 숲길을 음미하려면 조금은 느리게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 빨리빨리 만을 외치는 세상에서 설운 서른의 시만큼은 조금 느리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로쓰기를 시도했다.”

 

 

 

박활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안그라픽스 지식정보사업부 와 디자인사업부에서 근무했다. 격월간 디자인잡지 <디자인디비>와 <디플러스> 편집장을 지냈으며 민음사 출판그룹 세미콜론 편집팀장을 거쳐 현재 워크룸프레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텍스트를 이해한 좋은 북디자인’을 추천해달라는 말은 이를테면, 어떤 책이 있는데 그 책의 표지와 장정과 본문 서체와 여백 등등이 그 책 내용과 딱 맞아떨어져서 만약 다른 식으로 나왔다면 안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아예 다른 모습은 상상이 안 가는 그런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일 게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책이 없다. 세상의 모든 책은 얼마든지 다른 책일 수 있었다. 사실 표지를 비롯한 책의 모습이 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발상이다. 그리고 대부분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그 실행이 이뤄지고 있을 뿐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반영은 매우 협소한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텍스트를 이해한 좋은 북디자인이란 말이 제대로 의미를 획득하려면 그보다 넓은 컨텍스트를 획득해야 한다. 책의 물성 자체가 그것이 만들어진 때와 장소를 반영한다는 관념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그것을 매개하는 존재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텍스트를 이해하는 주체는 개별 디자이너의 영역을 넘어선다. 문학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책을 통해 이 시대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전체적인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지만,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개입되어 문학의 자리를 이동시키는 경우를 발견한다.

 

1.『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오규원, 문학과지성사, 1978

1974년 민음사에서 발간한 ‘오늘의 시인 총서’가 좋은 예다. 국판 30절로 발행된 이 총서는 한국 시에 소위 ‘시집 판형’이라는 독특한 물성을 부여했다. 그것을 결정한 배경에 시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얼마나 깔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이 현상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서 시라는 문학 장르 자체에 자의든 타의든 영향을 끼쳤다. 그 중 하나를 추천하자면 ‘오늘의 시인 총서’ 말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네 번째로 나온 오규원 시인의『왕자가아닌한아이에게』를고르겠다. 30년이 넘는 세월 400권이 넘는 시집이 나오는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그 시리즈의 표지 콘셉트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그분이다.

 

2.『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0

소설로 가보자. 소설이라는 놈은 너무 무거워서 통째로 자리를 옮길 수는 없지만, 출판사 차원에서 자신들이 내는 소설의 지정학적 위치를 정하고자 시도한 사례는 많으며, 그중에서도 디자인을 통해 모종의 성과를 낸 사례로 열린책들의 사륙양장 형식을 들 수 있다. 소위 열린책들 판형으로 통하는 이 형식은 2000년에 나온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결과물로 알고 있다. 단지 장정과 판형만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를 어떤 그릇에 담아낼 것인지를 몇 차례의 시험을 거쳐 판면, 행수, 서체와 자간과 행간까지 정했다. 편집과 디자인은 물론 제작을 비롯한 경제적 고려까지 폭넓게 포함된 결정이었다. 역시 하나를 추천하자면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말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를 고르겠다.

 

3.『펭귄클래식 총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현재

마지막으로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섹시한 표지와 장정의 책에 혹하고 마는 어쩔 수 없는 독자로서, 그래도 앞서 한 말이 있으니 체면치레하기에 알맞은 책이면서도, ‘텍스트를 잘 이해한 좋은 한국의 북디자인’이라는 설문 내용을 다시 곱씹어볼 수 있는 책으로 펭귄클래식 총서를 추천한다. 1946년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이 총서는 그동안 얀 치홀트(1949), 저마노 파세티(1963), 스티브 켄트(1985) 등 당대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치며 세월을 풍미해왔다. 2008년 처음 출간된 우리나라 판본의 디자인은 2003년 펜타그램의 앵거스 하이랜드가 제안하고 펭귄 미국지사에 근무하던 디자이너 폴 버클리가 마무리한 것을 토대로 했다. 펭귄클래식코리아는 여기에 “한국 독자의 감성을 고려하여 새로운 표지를 채택하여 디자인”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63년 세 번째로 클래식 총서를 단장하며 문학작품을, 그것이 쓰인 당대의 시각예술 작품과 함께 보여주려고 했던 파세티의 디자인 컨셉은 이제는 유효하지 않지만, 그가 했던 말은 지콜론의 이번 특집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고전들을 다시 디자인하면서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많은 고전들이 당대의 미술작품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또 반대로 미술작품들은 이런 고전들을 가슴에 품고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설흔

소설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등을 썼다.

 

 

1.『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이종묵, 안대회, 북스코프, 2011

감상에 빠져들지 않는 사진과 글, 그리고 표지. 아름다운 역사기행서.

 

2.『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염정섭, 옥영정, 심경호, 유봉학, 소와당, 2011

학술서다운 단단함과 정갈함이 제대로 표현된, 믿음직스러운 책.

 

3.『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아트북스, 2011

띠 지의 글 그대로.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을 느낄 수 있었던 책.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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