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필요한 디자인

 

QUESTIONS

1.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영역에서 ‘필요한 디자인’이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2. 영역과는 관계없이 디자인 전반에서 생각나는 주제에 부합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3. 당신이 생각하는 ‘필요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문승영

디자인 그룹 낮잠의 디자이너. 인권과 노동, 환경 부문의 디자인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으며, 정기간행 출판물과 전시 기획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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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을 주제로 한 기획, 그중에서 참여작가 이섭의 만든 포스터

먼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러한 기획을 하게 된 배경과 추진력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위 홍보팀의 담당자 남규선과 기획자인 디자이너 안상수의 진행 과정이 드러났으면 한다. 참여작가 이섭의 포스터는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들과 함께 진행한 것으로, 아마도 ‘신분 차별에 관한 사람의 권리’를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들이 살아온 역경을 드러내는 편지 글과 작가의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 포스터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같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섭은 우리 사회의, 절절히 살아온 이들을 위해 ‘헌화가’를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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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삼백육십오일 ‘해와 달의 노래’, 책임작가 이경복, 기획창작공방 산방(産方)

이경복은 화가였다. 지금도 화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미술 행위로 사회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온 미술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M조형’이라는 작가동인(회사이지만 동인에 가깝다)들과 벽화 운동을 했다. 그러다 농장 디자인을 하고 비닐하우스 디자인을 하고, 집을 디자인했다. 더러 공적 공간의 조형물을 디자인했고, ‘삼백만원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미술행위로 사회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그의 부단한 질문이 그를 ‘자생적 디자이너’로 살게 한 게 아닐까.

그의 작업 일년삼백육십오일 ‘해와 달의 노래’는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숫자’라는 효율적 도구로 인해 가려졌던 ‘우리 일상 주변의 풍경’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달력이다. 예컨대 ‘개나리 필적에 봅시다’라고 약속을 하면, 우린 개나리가 핀 풍경을 보게 되고, 마음에 품어 우리 또한 그 속의 한 풍경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달력은 가로 세로 5m 정도 되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으로 만들어져, 12달을 상징하는 12개의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조형물은 일산의 어느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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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프로젝트 ‘來日(Tomorrow)’과 알약으로 타이포그래피 작업한 ‘유행가’ 연작, 작가 배영환

배영환은 감춰졌거나 가려진 감성들을 드러내어, 그 상처를 보듬는 작가이다. 작가가 성숙하고 철들었다는 걸 작품으로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우리 시대의 작가이다. IMF 시기 그는 노숙인들을 위한 수첩 ‘거리에서’를 만들어 노숙인 지원센터에 보내기도 했다. 또한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은 소외 지역의 아동들을 위해 만든 작은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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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디자이너들을 위한 디자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른 숙제가 있다면, 이제 디자인이 우리 사회의 ‘가난’을 이야기해야 한다. 디자인으로 얘기해야 한다.

 

 

 

 

윤여경

<경향신문> 아트디렉터이자 디자인담론커뮤니티 ‘디자인 읽기(designersreading.com)’ 운영진이다. 현재 국민대 디자인대학원 그린디자인 전공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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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교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펭귄블록 _ 디자인. 이지영

지구온난화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으면 동토층에 대량으로 묻혀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뿌려집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바다로 흘러들어 섬을 잠기게 하고 해안을 잠식합니다. 이미 지구온난화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극의 신사 펭귄은 직접적인 멸종 위기 상황입니다. 빙하는 그들의 집입니다. 당장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펭귄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인간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남극 펭귄이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지루하고 때로는 끔찍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가 힘듭니다.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이 펭귄블록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디자인되었습니다. 집을 잃은 펭귄들이 서로의 어깨에 몸에 의지해 위태롭게 쌓여갑니다. 펭귄들의 오묘한 표정은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대변합니다.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행위와 상황으로 설명합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흥미 있고 쉽게 전달합니다. 아이들은 펭귄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환경의식이 쌓여갑니다. 블록을 쌓는 방식에 답은 없습니다.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창의적으로 쌓는다는 걸 수없이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펭귄블록 쌓기 놀이는 누가 가르쳐줄 것도 없이 다양한 형태가 나오는 친환경 놀이교재입니다. 지구온난화 교육에 있어 과연 이보다 더 좋은 교구재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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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재의 선택, 그린 컵과 웨딩드레스 _ 그린 컵 : 디자인. 이준서(에코준) 웨딩드레스 : 디자인. 이경재(대지를 위한 바느질)

옥수수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품디자이너는 옥수수 플라스틱으로 컵을 만들었습니다. 의상디자이너는 웨딩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과감하게 친환경적인 재료를 선택했습니다. 에코준의 ‘그린 컵’은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았습니다. 착한 재료의 선택과 사무라이의 칼로 살짝 벤 것 같은 티백 거치대가 신선합니다.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옥수수 플라스틱은 가공 시 열에 취약합니다. 여러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착한 재료를 사용하겠다는 신념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갑니다. 아프리카는 지구온난화로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물은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디자이너는 물을 마시는 컵을 팔아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려 합니다. 관련 이벤트도 진행합니다. 가상의 사막을 만들어 동전을 물이 담긴 컵에 넣는 게임입니다. 동전이 컵에 들어가면 물이 튀어 갈라진 흙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물과 환경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옥수수 플라스틱은 또한 웨딩드레스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계기로 과소비의 결혼 문화를 되짚어 봅니다. 이경재 디자이너는 작년 ‘까르띠에’에서 아시아 여성기업인 3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착한 재료의 선택과 착한 의지가 맺은 결과입니다. 친환경 재료로써의 옥수수에 관한 논란은 이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옥수수가 아니라 값진 의지입니다. 더 좋은 재료가 나온다면 이들은 과감히 옥수수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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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집 _ 디자인. 김미라

박쥐는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에서 멸종되어서는 안 될 동물 중 하나입니다. 배트맨이 고담시를 지키듯 박쥐는 지구환경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박쥐의 배설물인 구아노는 최고의 자연 비료입니다. 박쥐는 식물의 메신저입니다. 낮에는 꿀벌이 꽃씨를 나르지만 밤에는 박쥐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또 박쥐는 자연 살충제입니다. 박쥐 한 마리가 하루에 5,000~6,000마리 해충을 잡아먹습니다. 박쥐의 초음파는 인간에게 많은 지혜를 주었고, 의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업, 과학, 의학 등 많은 학문에서 박쥐는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이런 박쥐가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의 파괴입니다. 한마디로 집이 없어서입니다. 동굴이 폐쇄되고 숲이 사라져 박쥐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박쥐 집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높습니다. 이 박쥐 집은 제가 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박쥐 집입니다. 다 쓴 꿀벌 통을 재활용한 디자인입니다. 박쥐의 습성에 맞게 재단하거나 내부구조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현재 이 박쥐 집은 영월 박쥐박물관에 설치되어 실험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들여온 박쥐 집에는 박쥐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꿀벌들이 집으로 사용하던 이 박쥐 집에 과연 박쥐가 들어올지가 저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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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인간에게 필요한 디자인’은 ‘그린디자인’입니다. 그래서 ‘그린디자인’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필요한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디자인’의 의미는 좀 불분명합니다. 너무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디자인은 어떤 것’이라 말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보통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접두사로 수식하죠. 그래서 디자인 분야나 영역들은 대부분 앞뒤로 수식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 수식하는 단어에 봉사하게 됩니다. 디자인 분야로써는 좀 슬픈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디자인’에 이미 ‘그린’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앞에 굳이 ‘그린’이라는 단어가 붙어야 되는 현실입니다. ‘디자인’은 ‘그린’의 의미에 봉사합니다. 그래서 ‘그린’을 알면 ‘그린디자인’은 분명해집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슛을 쏠 때 ‘왼손은 거들 뿐’이란 표현처럼 ‘디자인’은 ‘그린’을 거들 뿐입니다. ‘그린’도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입니다만 ‘그린’은 개념을 정리하려는 시도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모아보면 그린의 큰 개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린’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접근합니다. 첫 번째는 인간이 중심인 ‘그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중심이 아닌 ‘그린’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중심인 ‘그린’은 3가지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1. 개인의 권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권리 즉, 인권입니다. 부당한 이유로 개인의 자유과 평등의 권리가 침해당한다면 그것은 ‘그린’에 반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습니다.

2. 인간 공동체를 위하는 입장입니다. 보통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서로 보호하고 아껴야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윤리와 공명정대한 정의가 중요합니다.

3. 마지막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위하는 입장입니다. 인간 종족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숲도 있어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하고 공기도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보존해야 합니다. 인간이 지속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의 환경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개인의 인권, 공동체를 위한 민주주의, 환경보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중심이 아닌 ‘그린’도 2가지 입장으로 정리 가능합니다.

1. 인간은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을 보면 지구 자체는 가이아라는 생명체입니다. 인간은 이 거대한 가이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가이아가 재채기라도 한번 하면 인간이 어렵게 이룩한 문명도 한 줌의 흙이 됩니다.

2. 인간은 동물입니다. 크게 보면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부이자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것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환상입니다. 모든 것은 자연의 흐름에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상적으로는 노장사상과 낭만주의, 과학적으로는 진화생물학 등의 주장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아닌 입장은 인간 중심의 첫 번째 입장의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이 모든 입장들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다양성’입니다. 인간이기에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 겸손해집니다.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측면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균형을 잡아줍니다. 이런 ‘그린’ 입장에서 하는 디자인이 바로 ‘그린디자인’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디자인’이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따질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꼭 필요하지 않은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오만하고 지나친 욕심이 ‘꼭 필요하지 않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백화점과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제품들이 모두 필요한 디자인일까요? 위대한 다양성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이용됩니다. 다양성의 인정도 오용되면 자칫 필요 없는 디자인을 옹호하는 논리가 됩니다.

‘그린디자인’은 분야가 아닙니다. 시각, 의상, 제품 등의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분야가 아닙니다. 삶의 가치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의 가치를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책임과 역할을 묻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위 기준에 맞는 ‘그린디자인’을 하고 계신가요? 내일 죽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과나무가 심을 땅이 없어지면 우린 뭘 해야 할까요? 가장 시급한 ‘진짜 인간에게 필요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이 무엇일까요? 40년 전 빅터 파파넥이 세상에 한 질문입니다.

 

 

 

임병화

브랜드디자인그룹 디자인파크의 디자인실 실장.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 에이전시에서 내공을 쌓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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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회적 브랜드, 공익적 브랜드, 착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어필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소비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욕구만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생각하는 착한 소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공공의 가치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목적이 기업의 이윤 추구나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있어 공공의 가치는 단순히 시즌성 캠페인으로 기업의 가치를 브랜드를 통해 포장하는 식의 것들이 많다. 즉, 결국 이슈가 희석되거나 재정적 문제에 접했을 때는 공적인 가치는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추방하기 위해 보노와 바비 슈라이더가 제안하고 울프 올린스가 실행한 레드 캠페인은 좀 더 혁신적이고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2015년까지 에이즈가 없는 아프리카를 만들기 위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애플, 부가부, 컨버스, 델, 아르마니, 갭, 나이키, 스타벅스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참여하여 (RED) 로고가 부착된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금의 50%를 기부하는 것이다. 기존의 캠페인이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작용한 데에 비해 캠페인 자체에 목적을 두고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RED) 로고가 부착된 제품을 보며 기업의 이미지보다는 캠페인 자체에 더 열광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목적에서 더 나아가 기업의 이미지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빨간색 제품이 전 세계로 퍼지는 만큼 에이즈가 사라진다는 상징성은 심플한 로고만큼이나 강렬하면서도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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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슈즈 역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기업이다. 2006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라는 미국의 한 청년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중 많은 아이들이 맨발로 수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는 현실을 목격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아르헨티나의 전통 신발인 알파르가타의 편안한 착화감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신발이다. 소비자가 한 켤레를 살 때마다 한 켤레가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기부되는 형식인 One for One 개념의 브랜드이다. 탐스슈즈는 심플하면서도 기능적이고 아름답다. 신어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갖고 싶어할 만한 디자인의 아이템이다. 그러한 소비욕구에 더해 ‘소비 = 구제’라는 공식을 부여해준다. 이는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공공의 목적에 참여하게 해준다. 대부분의 탐스슈즈 소비자들은 유니크한 제품의 디자인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더 열광하여 제품을 소비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적 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만한 좋은 예이다.

3

‘필요한 디자인’에 앞서서 ‘필요한 디자이너’가 먼저이리라 생각한다. 사회는 점점 소외되는 90%를 위한 다양한 관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는 명품 백을 메고 스타벅스에 앉아서아이폰을 만지작거리기를 원한다. 브랜드디자인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맞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을’이기에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고 클라이언트는 기업의 이윤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브랜드는 그러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잘 포장되어져야 한다. 디자이너는 좀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우며 모두를 위해 편리한 것을 만들기를 원한다. 때로는 정치적인 것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디자이너가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아는 만큼 실천할 힘도 더 많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에 열광한다. 그리고 제품을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그 문화를 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많은 디자이너들은 최고의 브랜드를 디자인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성공한 많은 브랜드들이 - 모든 브랜드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것들을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원산지의 생산자들은 평생을 모아도 명품 제품 하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아간다.) 이는 단지 예시일 뿐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좀 더 가치 있는 디자인을 위해서는, 디자이너 개개인의 의식적 각성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선택 받은 10%를 위하느냐, 아니면 소외되고 있는 90%를 위하느냐’는 디자이너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고 어떤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지는 개인의 가치에 대한 문제이다. 궁극적으로는 100%가 만족하는 디자인이 최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10%이든 90%이든 디자이너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자신의 결과물이 일으킬 파장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 나는 소외된 90%를 위한다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팔려지는 제품을 본 기억이 있다 - 그러한 의식들이 결국은 진정 필요한 디자인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필요한 디자인은 필요한 디자이너에 의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6월호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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