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_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관 '생활예술'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from London

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

 

글_윤여경

 

모리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을 ‘뿌리 없는 나무’에 비유했다. ‘전문예술’이 있기 위해서는 ‘생활예술’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전문예술’이 나무라면 ‘생활예술’은 뿌리에 해당한다. 모리스는 ‘전문예술’과 ‘생활예술’이 상호 작용해야 시대의 예술양식으로 자라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빅토리아 시대의 공예와 예술은 기계로 인해 ‘장인정신’이 점점 사라졌고 예술가는 귀족과 중간계급을 위한 ‘전문예술’에만 빠져 있었다. 모리스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전문예술’은 민중과 괴리되어있기 때문에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예술의 변화를 위해 ‘생활예술’의 토대 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리스가 보기에 ‘생활예술’은 ‘전문예술’과 달리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다. ‘생활예술’의 과정은 ‘즐거운 노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즐거운 노동’은 생활에서 쓰이는 물건들의 질을 높이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생활을 향하지 않는 예술은 ‘민중과 괴리된 예술’, ‘즐거움과 괴리된 예술’, ‘노동과 괴리된 예술’이다. 이런 주장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모리스만의 독특한 예술관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모리스는 ‘생활예술’의 부흥을 통해 ‘전문예술’을 개혁하고 시대의 종합적 예술양식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런 모리스의 예술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모리스는 예술작품 자체의 ‘질’에 관심을 갖는 동시에 이들 제품이 만들어지는 ‘방식’, 그리고 이들을 ‘만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관심을 가졌다. 한편 그는 작업실의 예술가와 그의 디자인을 선반이나 베틀에 적용하는 ‘끝도 없이 계속되는 노동’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기술적 디자이너를 분리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 톰슨, 『윌리엄 모리스 1』, 193쪽

 

위 인용문은 모리스의 예술에 대한 문제 인식을 보여준다. 모리스는 삶과 괴리된 예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분리된 예술을 비판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입장에서 접근했다.

첫 번째로 모리스는, 예술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양으로 측정되는 예술은 예술적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이다. 예술의 가치는 작품의 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예술은 구현하는 방식과 과정이 성실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잘못된 생산방식과 과정은 예술을 점점 더 조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는 예술이 기계생산에 종속되어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장인정신과 수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당시 기계가 정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계적 예술품들은 대부분 조악했다. 

 번째, 예술은 노동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노동은 정신과 육체가 잘 조화된 노동을 말한다. 모리스가 보기에 공장 기계에 종속된 노동은 예술 노동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분명 러스킨의 영향이었겠지만 모리스가 직접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느낀 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모리스는 질, 과정, 노동의 세 가지 측면에서 예술과 삶을 연결했다.

 

윌리엄 모리스와 러스킨

_모리스는 옥스퍼드 시절, 그의 사상의 토대가 된 러스킨과 칼라일의 저작을 탐독했다. 특히 노동의 가치를 찬양하는 러스킨의 예술론에 영향을 받았다.

 

모리스는 시대의 예술을 찾는 과정에서 ‘디자인’ 분야를 개척했다. 그의 예술관은 디자인 분야 형성에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모리스가 주장한 단순성과 기능성, 예술과 노동의 자율성은 여전히 디자인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접근은 중세 고딕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모리스의 주장과 작품들은 고딕 정신의 바탕 위에서 조성되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레드하우스’이다.

레드하우스는 모리스가 제인 버든의 결혼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지은 중세 양식의 교외주택이다. 페브스너는 레드하우스를 중세 고딕 건축과 근대 미국의 유명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레드하우스를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근원지로 평한다. 레드하우스는 모리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리스 디자인을 세상에 알린 ‘모리스 회사’도 레드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모리스는 친구들과 레드하우스를 짓고 집에 들어갈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모리스는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런 활동의 연장선으로 함께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모리스-마샬-포크너 회사’라는 공예 회사를 차린 것이다.

……중략……

레드하우스

 

<아름다운 이졸데>

_1859년 모리스는 제인 버든을 중세의 여인인 이졸데로 비유하여, <아름다운 이졸데>라는 작품을 남겼다.

 

모리스는 낭만주의자였지만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사업적 자질도 뛰어났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물적 여건이 충분했다. 시인으로서 자질도 있었기에 자신의 생각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예술가 모리스’는 모리스 생애 전반을 차지한다. 정치활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잠시 작품 활동을 쉰 적은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생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 말년에 모리스는 책 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졌다. “보기에 즐겁고 읽기가 쉬우며 ‘분명하게 아름다움을 주장할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것이 모리스가 말하는 좋은 책의 디자인이었다. 모리스의 책 디자인을 계기로 영미권에서 인쇄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글의 전문은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레드하우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

 

저자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저술가, 이론가, 교육자이다. 저서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스테파노 반델리, 2012)가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 『디자이너의 서체이야기』가 있고 〈디플러스〉, 〈지콜론〉, 〈GRAPHIC〉 등의 잡지에 기고했다.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그린디자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경향신문> 아트디렉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담론 사이트 〈디자인 읽기〉와 인터넷 팟캐스트 〈디자인 말하기〉를 통해 한국 디자인 사회를 향해 꾸준히 발언한다.

 

 

 

 

review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

Q & A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