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물건_사람은 후회할 걸 알면서도 사잖아요

반려 물건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글. 모호연
정리. 이가람



사람은 후회할 걸 알면서도 사잖아요


‘내가 이걸 왜 샀을까.’

물건을 사용하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잘못 산 물건이다. 불편함을 깨달았을 때 빠르게 정리하면 좋으련만,

나는 잘못 산 물건을 기어이 끌어안고 살며 두고두고 후회하는 인간이다.

내가 잘못 산 물건들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으로 구매한 경우가 더 많다. 온라인 쇼핑은 배송 후에 물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따진 다음 결제 하는데, 현장에서는 다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여러 요소가 나의 합리적인 소비를 방해한다.
그럼 도대체 물건을 잘못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소비 습관을 돌아보았다.





· 물건의 한 가지 특징에 꽂힌다
평소 나의 옷차림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딱히 시선이 머무를 데 없는 무난한 바지와 셔츠, 무채색의 외투를 즐겨 입는다.

그러나 빈티지 옷 가게에 가면 대다수의 사람이 절대로 입지 않을 옷들을 한참 들여다본다.

자개단추가 잔뜩 달린 원피스, 민속의상처럼 화려한 자수가 놓인 셔츠, 패치 워크로 만들어진 도톰한 두께의 치마 같은 것들이다.

지금도 옷장 안에 그런 옷이 몇 벌 있다. ‘언젠가는 입을 거야’라며 보관하고 있지만 나조차도 확신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옷을 산다’는 명분으로 예쁜 천과 레이스, 단추, 자수 장식 등을 수집한 것이니까.


·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다
마트에 가면 ‘원 플러스 원(1+1)’ 같은 각종 이벤트의 함정에 걸린다. 분명히 쇼핑 리스트에 없었는데

덥석 카트에 넣고 뿌듯해한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면 더 절박해진다. 싸우는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기 싫은 마음에 물건을 사고, 상술에 넘어가 결국 진다.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니.

애초에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마이너스 0원인데 말이다.


· 남이 권하는 물건을 거절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물건을 권할 때, 물건에 대한 생각보다 그 사람의 뛰어난 언변이나 카리스마에 이끌려 구매할 때가 있다.

반대로 남이 나에게 권유하는 상황 자체를 못 견디는 나머지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권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빨리 피한다. 매장 앞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을 피하고,

마트에 가도 시식 코너가 보이면 얼른 지나친다(그러지 않으면 사게 된다). 전자 기기는 매장이 아닌

라인 마켓에서만 구매하고, 텔레 마케팅으로 추정되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고 차단한다.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으로 30여 년을 살면서 깨달은 생존법인데, 거절하지 않기 위해 먼저 거절하는 법에 익숙해진 셈이다.


· 그냥 돈을 쓰고 싶다
심심함을 해소하려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돈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통장 잔액이 여유롭다면 해로울 일은 아닌데, 이 소비 충동은 경제적 여유와 무관하게 찾아온다.

오히려 소비를 자제하려고 애쓰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 번씩 돌풍이 불어닥치곤 한다. 평소에 정말 갖고 싶던 물건을

홧김에 지르는 것이면 그나마 괜찮다. 그 물건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해왔기 때문에 당장은 곤궁해지더라도

물건에 대한 만족도는 높을 것이다.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던 물건, 예를 들어 우유 팩을 밀봉하는 전용 집게라든지

아이스크림 스쿱, 캐릭터 굿즈 같은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이다. 재미로 돈을 쓰려거든 차라리

맛있는 것을 먹거나 유료 게임을 사서 신나게 노는 데 쓰면 조금 덜 불편하다. 하지만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면

내 실수의 증거를 보면서 함께 살아야 하니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위 글은 『반려 물건』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은 책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모호연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꾸준히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무엇이든 분해해서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만, 동거하는 물건들에게는 지극히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반려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와 함께 일상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SOSA PROJECT’를 결성하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데일리 구독 매거진 『일간 매일 마감』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재작으로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가정 생존자」, 「111 공방」 등이 있다.
dailymagam.com
mohoyeon@gmail.com



review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

Q & A

게시물이 없습니다

list write